1.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세대의 바이블 같은<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이 서적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멜론파크에 살던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 시적인 느낌을 담아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톱 출판이 이루어지기 전인 1960년대 후반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 책은 모두 타자기, 가위, 폴라이드 카메라를 이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구글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35년 전, 종이책으로 된 구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도구와 기발한 개념들로 넘쳐난 이상적인 책이었지요.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Whole Earth Catalog>를 몇 회 발간한 후, 책의 역할이 끝나갈 즈음에 최종호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지요. 마지막 호의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여러분이 모험심이 강하다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어 할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Stay Hungry(끝없이 갈망하라). Stay Foolish(한없이 바보처럼)” 이것이 바로 그들이 남겨준 작별의 메시지였습니다. “끝없이 갈망하라. 한없이 바보처럼” 저는 항상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졸업을 하고 새로운 날들이 펼쳐질 여러분들에게 제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2. 우리에게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정말로 훌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생은 짧고 결국에는 모두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으로 선택한 일입니다. 우리는 일본 어딘가의 절에 앉아서 수행을 하거나 항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골프를 치러갈 수도 있겠죠. 그들은 회사를 경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니 좀더 가치가 있게 일을 매우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Steve Jobs speaks out, Fortune,  MARCH 07 2008





3. 이 산업과 함께 성장한 저는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사업 초창기에 저는 거의 모든 일을 담당했습니다.  제품출하, 영업, 부품구입 및 공급, 바닥 청소, 감자칩 구매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나는 내 양손으로 직접 컴퓨터를 나르기도 했습니다. 산업이 커져가는 동안에도 저는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The Seed of Apple's Innovation, BUSINESSWEEK, OCTOBER 12, 2004






4. 픽사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헌신적이었고 토이 스토리와 캐릭터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로 만드는 영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어요.

다큐멘터리 The Pixar Story, 2007년





5. 많은 사람들이 픽사는 하룻밤 사이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하룻밤사이에 이루어진 성공도 오랫동안에 걸쳐서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ocumentary Pixar Story  2007년





6. 리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뭔가 훌륭한 것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맥을 만드는 사람들은 미치도록 훌륭한 제품을 원했다.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Apple confidential 2.0, Owen W. Linzmayer,No Starch Press, 2004





7.  사람들은 결과로 당신을 평가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결과물에 집중해야 합니다. 품질의 척도가 되세요. 어떤 사람들은 탁월함이 기대되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Steve Jobs: the journey is the reward,Jeffrey S. Young ,Scott, Foresman, 1988






8. 인터넷 창업 열풍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회사를 창업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끈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몰론 이해는 합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절망스럽고 고통스런 순간이 너무나 많거든요. 사람을 해고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취소해야 하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여러분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회사를 팔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지만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속여야 합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한 채로 말이죠. 절망과 고통의 순간 없이는 절대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새롭게 쌓아올린 부를 지켜낼 방법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Apple’s One-Dollar-a-Year Man , Fortune ,24 January 2000





9. 우리는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대중화시켰고, 최초의 아이맥에서는 플로피 디스크를 제거했습니다. 우리는 직렬과 병렬포트를 없애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이맥에서 USB를 처음 보았을 겁니다. 우리는 맥북에어에서 옵티컬 드라이브를 최초로 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미쳤다고 합니다.




<해설>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 부어도 문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열심히 파고든다고 해도 주변에서 냉소적이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절대로 그런 시선에 흔들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D8 - AllThingsD(via Engadget Steve Jobs live from D8)  1 Jun 2010 11. 




10. 


여기 미치광이들이 있다.

사회부적응자, 반항아, 말썽쟁이

네모난 구멍 속에 쑤셔 넣은 둥근 못같은 사람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를 존중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자유지만 단 한 가지, 당신은 그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이끌고 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미치광이로 보겠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천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여한 Think Different의 광고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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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야기2008.03.20 01:17


애플 연혁

1950년 애플의 공동창업자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태어나다.

1955년  스티브 잡스가 샌프라시스코미혼모인 조앤 캐롤에게 태어나지만 사내아이를 원하던 폴과 클라라 부인에게 입양된다.

1971년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빌 페르난데즈의 소개로 21살의 대학생이었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교류하게 된다.

1972년  스티브 잡스가 오리곤주의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칼리지 대학의 물리학과에 입학 하지만 한학기만 다니고 자퇴한다.

1974년  스티브 잡스는 퐁의 성공으로 당시 최고의 컴퓨터 벤처기업으로 군림하던 아타리에 취직하여 게임기획자가 된다.

1975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캘리포니아에 기반한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알테어 8800에 깊은 인상을 받은 스티브 워즈니악은 비싼가격으로 인해서 구입할 수가 없게 되자 손수 개인용 컴퓨터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1976년 MOS Technology 6502 칩을 사용한 그들의 첫번째 컴퓨터 애플 1을 홈브로 컴퓨터 클럽에 최초로 선보인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상품화를 위해 휴렛패커드사람에게 애플 1을 보여주지만 거절당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설득하여 직접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를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자계산기를 팔아서 사업자금을 마련한다. 둘은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개조해서 애플컴퓨터를 설립하다. 그들의 첫번째 직원은 아타리사에서 알게된 론 웨인 이었다. 론 웨인은 애플의 첫번째 로고를 디자인했으며 매뉴얼 작성을 책임졌다.  애플1은 바이트 숍을 통해서 666달러에 주문을 시작한 후 열달에 걸쳐서 200여 대정도 판매된다. 
스티브 잡스는  레지스 메키나와 홍보와 광고 계약을 맺는다.

1977년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던 백만장자 마이크 마큘라가 애플의 차고를 방문한 후 9만 2천달러의 투자를 결정한다. 그는 1985년에서부터 1997년까지 애플의 회장으로 근무한다.
세계 최초로 컬러를 지원하는 컴퓨터인 애플2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열린 WCCF(West Coast Computer Faire) 에서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끈다.
애플2가 1295달러에 정식 판매를 시작하고 첫달만에 백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한다.  애플의 CEO로 마이클 스캇이 임명된다.

1978년 최초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 애플 II+를 출시하다. 마이크 마쿨라의 활약 덕분에300개가 넘는 판매점을 확보하게 되고 판매량은 전년도에 비해서 10배가 넘어선다. 늘어나는 매출과 수익으로 애플은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업체로 뽑히게 된다.
오늘날 애플이 있는 쿠퍼티노에 사옥이 들어서다. 애플의 본사는 애플캠퍼스라는 애칭을 얻는다.

1979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2 만 천달러에 애플 베이직 소프트의 라이센스를 받고 판매를 시작한다.
최초의 스프레드 쉬트 프로그램인  비지캘크(VisiCalc)가 퍼스널 컴퓨터사를 통하여 백달러에 발매된다. 비지캘크의 높은 인기 덕분에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대세가 애플2로 급속히 기울어진다.

제록스는 애플의 주식 십만주를 백만달러에 투자한다. 이 거래를 통하여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엔지니어가 제록스의 연구소에 방문을 하고 거기서 그래픽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알토컴퓨터를 직접 목격한다.
애플의 컴퓨터는 타이핑 라이터가 아니라는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타킷으로 한 교육용 컴퓨터 시장에 본격진출하다.

1980년 세계최초의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포함한 최고급 사양의 개인용 컴퓨터 리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를 위해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에서 15명의 새로운 인재들을 스카우트해온다.

애플의 직원이 천명을 넘어서고 판매점도 천개를 넘어선다.
애플이 주식시장에 공개되어 스티브 잡스는 2억 1천 7백만 달러의 갑부가 된다. 공동창업자인 투자자인 마이크 마큘라는 2억 3백만달러를 벌게된다.
3495달러에 애플 III를 출시하지만 각종 버그로 인하여 시장에서 혹평을 받고 애플 최초의 실패작으로 남는다.

1981년 애플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를 리사 프로젝트에서 빠지도록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는 리사와 같은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 컨셉이면서 가격은 대폭 낮춘 매키토시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IBM의 본격적인 시장진출에 대해서 애플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환영한다는 광고를 낸다. 하지만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키자 애플은 위기의식에 가지게 된다.
세계화의 일환으로 애플은 프랑스 파리에 유럽 지사를 열다.
컴퓨터 업체 역사상 최초의 독자적인 행사인 애플 엑스포가 시작된다.

1982년 개인용 컴퓨터 업체중 최초로 10억달러 매출을 돌파하고 빌리온 달러 파티를 연다.( Billion Doller Party)

시사잡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내정하고 마이클 모리츠에게 관련 기사를 쓰도록 한다. 하지만 마이클 모리츠는 애플을 방문후 올해의 인물로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로 교체한다.
대학교에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도구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대학교 마케팅을 본격화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차세대 컴퓨터인 매킨토시용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합의한다.

1983년 리사 컴퓨터가 9998달러에 발매된다. 언론으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제품으로 뽑히었으나 비싼가격으로 고객에게는 철저히 외면 당한다.
애플2 컴퓨터의 누적판매량이 백만대를 넘어서다.

초대 애플의 CEO였던 마이클 스캇의 후임으로 펩시의 마케팅 최고 책임자였던 존 스컬리를 영입한다.

1984년 궁금증을 자극하는 1984 빅브라더 광고를 선보여 매킨토시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다.

1월 24일 2495달러에 매킨토시가 정식으로 발매된다.
애플2의 누적판매량이 2백만대를 넘어서다.

1985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백악관에 초대되어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기술 유공자 메달을 받는다.
애플의 공동창업자중에 한명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회사를 그만두고 비디오 관련 회사인 CL9회사 설립하다..
매킨토시의 판매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스티브 잡스는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회장으로만 일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사무실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베리아라는 별칭이 붙었다. 결국 그는 7월 17일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정한다.
 올더스(PageMaker)가 전자 출판을 위한 페이지 메이커가 킬러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면서 판매량이 급상승한다.

1986년 애플은 회사를 그만 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기밀 유출로 고소한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직원을 고용할때는 반드시 허락을 받을 것과 애플 컴퓨터와 겹치지 않는 제품을 개발해야한다는 조건에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주식 1주만을 남기고 모두 매각한 후 넥스트(NexT)를 창업한다. 넥스트의 주요 투자자는  미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억만장자 로스페로와 매킨토시 전용 프린터로 큰 수익을 얻은 캐논 그리고 넥스트의 본사가 위치했던 스탠포드 대학교 등이었다.

애플은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통하여 80개국이 넘는곳에서 애플컴퓨터를 판매하는 세계화에 성공한다.
애플은 학교 교사들을 위한 대규모 판촉전을 벌여서 큰 성공을 거둔다.
1986년  스티브 잡스는 스타워즈시리즈로 명감독의 반열에 오른 조지 루카스로부터 3D 그래픽 전문 업체 픽사(Pixar)를 천만달러에 인수한다.
       애플은 컴퓨터상에서 알파벳이 아닌 한자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입력할수 있는 칸지 토크(KanjiTalk)를 선보이면서 일본과 아시아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 최초의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윈도우(Window) 95 를 선보이다. 윈도우의 영향으로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한자리로 추락한다.

1988년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는 최고급 사용자들을 위한 컴퓨터 넥스트큐브(NextCube)를 발매한다 넥스트 큐브는 최초로 월드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서버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1989년 애플 최초의 노트북 애플 포터블을 선보이다. 6500달러라는 고가격과 가지고 다니기 힘든 무게로 인해서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1991년 애플의 본격적인 노트북 브랜드 파워북이 등장하다.

1993년 매킨토시의 총 판매량이 천만개를 넘어서다.
세계최초의 PDA 뉴튼을 발매하다. 제품의 혁신성으로 많은 화제를 뿌렸으나 천달러가 넘는 금액과 짧은 시간의 배터리문제로 인기를 지속시키지 못한다. 매킨토시의 점유율 하락과 뉴튼의 판매 부진으로 인한 수익악화가 계속 되자 CEO인 존스컬리가 사임한다. 그의 후임으로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에 임명된다.

1994년 애플은 숙적 IBM과의 협력으로 파워매킨토시를 선보인다.
파워컴퓨팅과 유맥스등 전세계의 업체들에게 매킨토시 호환컴퓨터를 라이센스 주었다. 이제 매킨토시를 만드는 회사는 애플만이 아니게 되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 아래에서의 아이콘과 인터페이스 체계에 대해서 합의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직원 530명중에서 280명을 해고하고 하드웨어 시장에서 철수하고 운영체제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애플에게 두번째로 큰시장인 일본에서 매킨토시 판매량이 백만대를 넘어서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발매되고 이로 인하여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한자릿수로 떨어진다.

1996년 애플은 최초로 가정용 게임기인 피핀을 발매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피핀이야 말로 애플이 나아갈 길이라면서 극찬을 하지만  시장에서는 실패한 다.

6천 백만달러의 적자가 발표되자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질아멜리오가 선임된다.
애플의 CEO인질아멜리오는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서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 3천만 달러에 인수합병한다.

1997년 길 아멜리오가 사임하고 스티브 잡스 애플의 임시 CEO가 되다.
애플은 마이크로 소포트로부터 1억 5천만달러의 투자를 받는 동시에 계속해서 매킨토시로 오피스 시리즈등의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5년이상 제공하기로 합의한다. 이에 대한 조건으로 애플은 매킨토시에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내장하기로 한다.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주문받는 애플 스토어가 열리다. 열두시간만에 50만달러의 주문을 받는다.

1998년 적자회사였던 애플은 스티브 잡스 복귀 1년만에  47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는 흑자회사로 바뀌었다.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을 선보이다. 아이맥은 1998년 한해동안 80만개를 판매하고 2003년까지 6백만개를 판매한다.

2001년 휴대형 MP3 플레이어 아이포드를 판매하다.
넥스트사의 인수 합병조건으로 시작된 유닉스 기반의 운영체제 맥오에스텐이 발매되어 시장에서 호평을 얻는다.
애플제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줄어들자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애플은 직접 경영하는 오프라인 상점인 애플스토어를 캘리포니아와 버지니아에 오픈한다.

2007년 현재 애플스토어는 172개의 직영점으로 확대되었다.

2003년 미국전체 음악 시장을 장악한 다섯개의 음반사 유니버셜, 워너 브로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BMG, EMI의 정식협의를 통하여 인터넷 음악 판매 사이트 아이튠스 스토어가 시작된다.

2004년 더 작아진 아이포드 미니를 선보여 그 인기를 이어가다.

2006년 아이튠스 스토어의 음악 판매량이 10 억곡을 넘어서다.
애플 최초로 인텔의 CPU를 사용한 데스크톱 컴퓨터 맥프로와 노트북 맥북을 발매하다.

2007년 아이튠스 스토어의 음악 판매량이 30억곡을 넘어서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서 휴대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다.  아이폰은 100일만에 100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구글은 2007년 가장 인기있었던 검색어로 아이폰을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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