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시애틀 내에서 손꼽히는 명문가 집안에서 1955년 10월 28일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은행창업자였고 아버지인 윌리엄 헨리 게이츠2세는 유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 매리 게이츠는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 First Interstate Bank)의 워싱턴주 책임자로 일을 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빌 게이츠의 이름이 같았던 관계로 집안에서는 그에게 트레이(Trey)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마을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집안은 엄격하여서 초등학교시절의 하루 용돈은 25센트에 불과했다. 또한 주말에는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말고 보이스카우트 같은 적극적인 야외 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그는 아이큐 170을 자랑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번 읽은 백과사전은 있는 그대로 모든 내용을 기억 할 정도였다. 교회에서 성경 암송대회가 있기라도 하면 그는 가장 먼저 앞장서서 참가하고는 꼭 우승을 해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학교 성적은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빌게이츠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그에게 항상 최고가 될 것을 강조했다. 경쟁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아버지의 생각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여행을 가면 스포츠처럼 승패를 가리는 게임들로 여가시간을 보낼 정도였다. 


빌게이츠가 11살이 되던 해에 하버드 대학교의 등록금보다 3배가 더 비싼 시애틀 최고의 명문사립학교 레이크 사이드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엄격한 교육환경을 자랑하는 학교였던 만큼 적응이 힘들었다. 이 때문에 짜증이 갈수록 늘어났고 반항심이 커져갔다. 결국 부모들은 그를  아동 심리 치료사에게 보낸다. 다행히 심리 치료사는 빌 게이츠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터득하도록 하였다. 부모와의 싸움은 결국 자식이 승리하는 게임이고 결국 그게다 부모가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라는 조언 덕분에 그는 엄청난 양을 읽어 되는 독서가로 변모한다. 학교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아이가 15권이라면 빌 게이츠는 그 두 배인 30권을 읽었다. 포춘이라는 경제잡지처럼 어른들을 위한 서적과 심리학 서적을 특히 많이 읽은 덕분에 그는 나중에 뛰어난 협상가가 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중하위를 달리던 학업성적도 전체과목에서 A학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으로 변모하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1968년 빌 게이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레이크 사이드 학교의 어머니회는 바자회에서 3천달러의 수익이 나자 이 돈으로 학생들을 위한 컴퓨터를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시애틀에서 최초로 컴퓨터 환경을 구축하는 학교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의 개념은 대형컴퓨터에 단말기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개념이었다. 학교에 설치된 컴퓨터 환경은 GE사의 ASR-33 텔레타이프를 임대하는 방식이었다. ASR-33은 회사 중앙 컴퓨터와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타자기 모양의 단말기인데 모니터가 없는 대신 프린터로 출력결과를 알려주었다. 회사의 본사 중앙 컴퓨터에 데이터를 보내서 처리 결과를  단말기로 받아보기 위해서는 시간당 40달러의 요금을 내어야만 했다. ASR-33이 설치되자 학교에 호기심 많은 소년들이 달려들었다. 그 중에 으뜸은 역시 빌게이츠였다. 자신이 내린 명령을 척척 처리해내는 이 기계에 완전히 매료당한 그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 온 열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빌게이츠 처럼 컴퓨터에 뛰어난 실력을 드러내는 소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폴 알렌이다. 폴은 나중에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하는 평생의 친구가 된다. 미국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라고 하는 SAT에서 1600점 만점을 받을 정도로 폴 알렌 역시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 본다는 말이 있듯이 빌게이츠와 폴알렌은 처음 만남부터 컴퓨터를 매개로 하여서 깊은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둘은 컴퓨터에 대해서 정말 무섭게 달려들었다.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자료가 부족하면 컴퓨터회사에 직접 연락해서 기술지원과 매뉴얼을 받을 정도였다. 


중학생 밖에 안되는 이 소년들은 어느덧 TIC-TAC-TO 같은 게임을 직접 개발하며 컴퓨터 전문가가 되어갔다. 덕분에 학교선생님보다 컴퓨터에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시간이 과다한 게 문제였다. 컴퓨터를 이용한 시간에 따라서 요금을 내는 종량제였기 때문에 어머니회에서 확보한 자금이 몇주만에 바닥난다. 결국 컴퓨터 사용료를 감당 못한 학교에서는 컴퓨터를 더 이상 학생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이때 빌 게이츠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자신들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이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을 비롯한 몇 명의 친구를 더 규합해서 레이크 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을 결성한다. 그리고 빌게이츠는 대형컴퓨터를 임대해주거나 판매하는 C-CUBED 본사에 당당히 찾아가서 협상을 시도한다. 프로그램의 버그를 찾아 줄 테니 컴퓨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회사의 사장은 나이도 어린 10대 청소년들의 제안을 듣고는 잠시 당황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했지만 이내 곧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컴퓨터를 야간시간에 한정하여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C-CUBED는 얼마 못 가서 회사가 도산을 하게 되고 빌게이츠를 주축으로 한 레이크 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낸다. 그런데 마침 폴 알렌의 아버지를 통해서 워싱팅 주립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조금씩 이들의 컴퓨터 실력이 알려지게 되고 인포메이션 서비스라는 회사에서 일꺼리를 하나준다. 사원들의 급여를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의뢰를 맡겼다. 처음 제안이 들어 왔을 때 만해도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생인 자신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일이라면서 중도에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이때 빌게이츠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팀원들과 함께 프로그램 제작을 완수해낸다. 3개월 동안의 작업끝에 1만달러의 수고비를 받은 빌게이츠는 이때의 자신감을 발판 삼아서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사업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빌게이츠의 생각에 선뜻 허락해준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은 TRAF- O -DATA 였다. 그는 고속도로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숫자와 용량을 컴퓨터로 계산해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2만달러를 벌게 된다. 이렇게 빌게이츠의 컴퓨터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자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적과 출석관리를 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때 그는 학교에서 예쁜 여자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반을 구성하고 같이 수업을 듣는 남자는 빌게이츠 혼자만 출석하는 수업시간표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가  빌게이츠의 학생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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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야기2010.11.10 08:05

지금 세상은 애플, 구글, MS의 치열한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애플, IBM, MS의 IT 삼국지가 펼쳤졌죠. 그때를 생각하며 1차 IT 삼국지시대의 이야기들을 작성하여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최근 애플 부사장이었던 페이지 마스터가 전격적으로 사임하자 여러 추측들이 쏟아졌다. 아이팟을 개발한 토니 퍼델 후임으로 2년전 IBM과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데려온 페이지 마스터는 애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IBM의 분쟁 때문에 정식 업무를 시작한지 1년 4개월만에 페이지 마스터가 전격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자 이를 두고 아이폰 4의 안테나 게이트에 대한 문책성 인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페이지 마스터가 애플의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신임을 잃은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애플은 원래부터 기존의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서부 지역 특유의 히피문화를 물려받았기 외부 인사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특히 서부 지역과는 반대되는 기업 문화를 가진 동부 지역의 기업 그것도 IBM을 다닌 페이지 마스터는 더더욱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1980년 애플과 IBM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PC 전쟁은 단순히 라이벌 회사간의 경쟁이 아니었다. 애플과 IBM은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의 자존심 싸움과도 같았다. 유럽과 교류하기가 쉬웠던 동부지역은 모든 경제 환경이 서부지역보다 월등히 좋았다.

 그래서 서부지역에서 태어나서 대학까지 다닌 사람도 취직을 위해서 뉴욕 같은 동부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명문사학인 스탠포드 대학교의 프레드릭 터먼교수는 제자들이 대학을 졸업하자 마다 동부지역으로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마침 그가 아꼈던 제자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 후 각각 취직과 진학을 위해 동부지역으로 떠났다가 다시 서부로 돌아오자 그들에게 창업을 권유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회사이름은 동전 던지기를 통해서 결정했다. 동전 던기지는 휴렛의 승리가 되었고 회사이름은 휴렛 & 팩커드 즉 HP가 되었다. 차고에서 두 명의 젊은이가 538달러의 자본으로 시작된 이 회사는 현재 개인용 컴퓨터 세계 1위의 오른 HP이다.

 HP는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시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HP 성공 이후 과수원밭이었던 실리콘밸리 지역은 첨단 벤처 산업의 요람이 되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HP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애플의 청사진을 마련했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정식직원으로 근무했을 정도로 HP와 애플은 여러가지로 인연이 깊다. HP이후 인텔 같은 여러벤처 기업들이 성공했지만 여전히 동부지역의 회사들에 비하면 꼬맹이에 불과했다. 바로 이때 애플이 등장해서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인 IBM에 도전장을 던진다. IBM은 메인프레임 같은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컴퓨터 산업의 지배자였다. 70냔대 중반만 해도 컴퓨터는 곧 IBM으로 통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두명의 젊은이가 차고에서 시작된 애플은 창업한지 단 4년만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었고 포드 자동차 이후 가장 성공한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단숨에 억만장자에 등극하면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애플의 갑작스런 성공에 자극 받은 IBM은 곧 PC를 통해서 반격을 한다.  IBM-PC가 발매되자 이를 구입해서 분해를 해본 스티브 잡스는 성능과 기능면에서 엉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것을 환영하는 광고까지 내보낼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처음에는 애플과 IBM이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고 언론도 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IBM과 당당히 경쟁하는 애플의 모습은 그 동안 뒤쳐졌던 서부의 반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두회사의 문화를 보면 서부와 동부의 지역차이를 알 수 있다. 유럽과 교류를 하면서 발전한 동부지역은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가 많은 만큼 전통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많았다.

 이에 비해서 서부지역은 기존의 보수적인 문화에 반기를 든 히피 문화의 탄생지 답게 진보적이었다. 이런 차이는 그들의 복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의 회사였다면 IBM은 양복을 입은 신사들의 회사였다. 애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심지어 양복도 없다. 동부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통신회사인 AT&T의 직원들이 애플직원에게 회사의 이사를 만날 때는 예의차원에서 양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자 애플은 양복을 입지 않는다면서 애플 직원들은 양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반박할 정도로 양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비해서 IBM은 복장이 엄격해서 무조건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입어야만 한다. 이러한 복장 차이가 기업 문화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IBM은 예의바르고 항상 격식을 차리는 어른의 회사지만 반면에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대학생처럼 활기차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학생들의 회다. 하지만 사려깊지 못하고 즉흥적이며 팀보다는 개인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애플 일본의 지사장이었던 하라다 에이코씨에 의하면 애플직원이 자신의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락앤롤의 밴드멤버라면 IBM은 하모니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향곡 연주가와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에이코에 의하면 팀 플레이를 통해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락앤롤 연주자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쉬운 위험함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애플과 IBM의 문화적 차이가 큰 만큼 IBM에서 일했던 페이지 마스터가 애플에 얼마나 적응하기가 힘들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애플과 IBM의 차이는 스티브 잡스가 주창한 해적정신에 집대성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생각지도 못한 IBM-PC의 돌풍으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매킨토시를 개발한다. 매킨토시 개발자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해군이 되지 말고 해적이 되라고 강조했다. 해군은 기존의 사물과 관습을 지키기에 급급하지만 해적은 이를 과감하게 파괴한다. 해군이 IBM이었다면 해적은 애플이었다. 애플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IBM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자 하였다. 사실 1980년만 해도 IBM의 매출은 애플의 200배에 이르고 연구금액은 100배가 차이나는 거대 기업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큰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성공 방식대로 싸워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기존의 성공 방식은 결국 돈이 많은 회사가 승리하기 마련이다. 그런 회사와 싸워서 이길 려면 결국 더욱 새롭고 창조적인 제품을 내놓야만 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매킨토시는  텍스트기반의 개인용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른 그래픽 기반의 컴퓨터였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내놓으면서 IBM과의 경쟁을 더욱 극적이면서도 애플을 구원자로 만들고 싶었다. 이때 제작된 광고가 그 유명한 1984이다. 소설 1984는 절대권력을 가진 빅브라더스가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통제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매킨토시 광고는 소설속 내용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대형 스크린에서 빅브라더가 끊임없이 윽박지르면 넋이 나간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과 의지도 없이 빅브라더에 복종하는 이미지가 그대로 전해진다. 이때 망치를 든 여인이 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와서는 빅브라더의 모습이 있는 대형스크린에 망치를 던진다. 그리고 자막을 통해서 애플이 1984년 애플이 매킨토시를 소개한다면서 왜 소설의 1984와 현실의 1984가 다른지를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광고는 단 한번 방영했지만 미국에 센세이셔널한 충격파를 선사한다. 1984광고는 엄청난 호평을 들으며 각종 광고상을 휩쓸었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화제가 될정도로 광고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 광고에서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광고속 빅브라더스가 IBM이고 도끼를 든 여인이 애플이었다. IBM이 지배하는 컴퓨터 세상을 애플이 파괴하겠다는 의도가 이광고에 담겨져 있었다. IBM을 악당으로 만들고 악당과 맞서 싸우는 영웅 애플의 모습은 오늘날 애플에 열광적인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광고 덕분에 매킨토시는 출시되자 마자 5만대 이상이 판매되면서 매진행렬을 이어간다.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는 기존의 컴퓨터와는 완전히 달랐고 개인용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들었다. 하지만 매킨토시에는 응용 프로그램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판매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실적 부진으로 스티브 잡스와 이사회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결국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고야 만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사무실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고품질의 인쇄를 가능하게 하는 프린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었는데 그의 이런 노력이 1985년 엘더스사에서 등장한 페이지 메이커이다. 페이지 메이커는 전자출판 혁명을 불러 일으키며 실적악화로 어려움에 빠져있던 매킨토시의 구원자가 된다. 페이지 메이커 덕분에 매킨토시의 판매량도 덩달아 급상승하며 애플은 화려하게 부활한다. IBM-PC는 일반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였다면 애플의 매킨토시는 그래픽전문가들을 위한 컴퓨터가 되면서 시장을 양분하게 된다.

정작 애플과 IBM의 치열했던 PC 전쟁의 최후 승리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PC에 DOS를 납품하면서 극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를 개발하는 한편으로 애플의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베낀 윈도우를 만든다. 윈도우를 보고 분노한 애플의 CEO 존 스컬리는 빌게이츠를 직접 만나서 항의를 하였다. 이에 빌게이츠는 매킨토시 독점으로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주는 조건으로 매킨토시 운영체제에 사용된 인터페이스를 라이선스 해줄 것을 요구한다. 터무니 없는 요구였지만 기술에 문외한이었던 존 스컬리는 덜컥 빌게이츠가 원하는데로 계약을 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스티브 잡스가 몇 년간 고생하면서 만든 맥 오에스를 빌 게이츠는 얼마든지 마음껏 쓸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침 IBM에서도 매킨토시 처럼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만 해도 IBM이 컴퓨터 업계를 지배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빌게이츠는 무슨일이 있어도 IBM과 끝까지 같이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IBM쪽 사람들을 설득해서 IBM이 준비하는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인 OS/2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IBM은 아무런 의심없이 제휴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OS/2의 개발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마침 IBM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만드는 척하면서 윈도우에 전력을 쏟는다는 것을 눈치챈다. IBM은 이에 분노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이때 빌 게이츠는 OS/2는 고급 컴퓨터들을 위한 운영체제고 윈도우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낮은 저가형 컴퓨터를 위한 운영체제라면서 IBM을 설득한다.

  IBM은 기술에 문외한이었던 존 에이커스였는데 신기하게도 존 스컬리처럼 빌 게이츠의 감언이설에 넘아가고 만다. IBM은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잘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그 기대는 얼마 후 산산히 깨져버렸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작인 윈도우 3.0이 시장에 등장하자 돌풍을 일으킨다.  1년동안 무려 4백만개가 판매되었는데 이는 매킨토시가 6년 동안 팔았던 전체 총 누적수보다 많은 숫자였다.  윈도우 3.0이 대성공을 거두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당장 IBM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바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IBM은 이에 분노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너무나 커버렸다. 윈도우 95가 발매될때는 IBM 역시 눈치를 봐야할정도였다. 윈도우 95의 성공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는 더욱 커졌고  IBM은 아예 PC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애플 역시 윈도우 95 광풍에 치명타를 입고 추락하기 시작한다. 1997년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 5천만달러 투자를 받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항복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IBM과 애플의 1차 PC 전쟁은 결국 두 회사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한 마이크로소프트를 IT 황제로 등극시키며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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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MS 이야기2009.07.14 16:26



파이낸셜 타임스에 의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조만간 MS 오피스 온라인 버전을 내놓을 예정이랍니다.

그런데 MS 오피스는 구글 오피스(영문 Google Docs) 처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을 거랍니다.

마이크로소포트와 구글의 경쟁이 점입가경의 단계에 들어선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저번주 구글에서 내년 하반기 구글 크롬 OS를 내년 하반기에 공개한다고 했었죠?

저는 그 발표가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소한 제품에 대해서 확실히 보여줄 그 어떤것을 공개하면서 구글 크롬 OS를 발매해야한다고 하는데..

그냥 내년 하반기에 발표된다고 해서 이거뭐지?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 이유를 좀 알겠더군요.

바로 무료로 사용가능한 MS 오피스에 엿먹일려는 것이죠.

구글 크롬 OS 발표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상대적으로 MS 오피스 무료버전 공개라는 역사적 사실이..

웬지 가볍게 느껴지더라 이말입니다.

근데 이게 저의 생각만 그런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Microsoft To Crush Google Docs (GOOG, MSFT)

여기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하여튼 마이크로소프트가 드디어 진정한 적수를 만난듯한 기분이 듭니다.

참고적으로 2009년 1분기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피스를 포함함 소프트웨어 45억달러
비스타와 XP를 포함한 운영체제 33억달러
게임 17억달러
온라인 광고 7억달러


보시다시피 오피스는 MS의 킬러소프트이자 돈줄이지요.

그런데 오죽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돈줄인 오피스를 무료로 공개하겠습니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변화합니다. 이 변화의 핵심은 역시 구글오피스 덕분이지요.

구글오피스가 기업들을 중심으로 아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것 같습니다.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고육지책으로  MS 오피스 웹버전을 무료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아참. 현재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분야는 역시 그래도 구글의 본진인 검색시장이지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얼마전  거액의 돈을 들여서 빙을 서비스 중이라는거 너무나 잘아실겁니다.

그런데 점유율과 관련되서 올랐다 혹은 떨어졌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하면 빙이 공개된 5월의 순방문자숫자보다 8%정도 성장을 했다고 밝히고 있네요.

덕분에 주식도 많이 올랐더군요.

이번 빙이 기존의 라이브처럼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아뭏든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경쟁...

보는 사람이 다 재미있게 만드네요.

물론 당사자들이 힘들겠지만.. 경쟁은 소비자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것 같습니다.

IT 전문 블로거(?)로써도 쓸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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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8.07.20 08:49

마이크로소프트가 드디어 구글의 애드센스 광고와 비슷한 서비스를 도입한다는 군요. 올해초부터 개발에 들어갔고 7월 21일에 본격적인 테스트를 시작한답니다. 이미 몇몇 회사와 계약도 한 모양입니다.

사실 야후도 비슷한 서비스를 진행중이었지만.. 구글의 애드센스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는데..역시 자금에 있어서는 최고를 달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군요.

참고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라이브 캐쉬백이라는 광고를 진행중인데요. 말그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광고 검색 사이트인 LIve.com에서 물건을 검색한 후 책이나 음반등을 구입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고객에게 일정 이상의 돈을 되돌려주는 건데요.

사실 이런것도 돈많은 마이크로소프트만 진행할수 있는거고.. 내가 보기에 이건 무료광고라고 생각되더군요.

광고주들에게 광고비로 받은돈 고객들에게 캐쉬백으로 돌려주는 거죠.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라이브 캐쉬백은 많은 사람의 비웃음과 비아냥속에서 시작했으나...

컴스코어에 의하면 라이브 캐쉬백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부분이 15%나 성장해서.. 전체 검색 점유율이 8.5%에서 9.2%로 상승했습니다.

참고적으로 구글은 61.5%로 0.3% 하락했고 야후는  20.9%로 0.3% 상승했습니다.마이크로소프트는 계속 하락이었는데.. 반전의 기회를 찾은 것 같군요.

사실 야후구입하는데 들어가는 450억달러의 금액을 이번에 새로 도입하는 애드센스 방식의 광고에..  퍼붓는다면.. 확실히 효과가 있을텐데말이죠.....

이번 마이크로소프트의 계획을 보면 참 여러가지가 생각납니다.

결국 웹 2.0 이라는게...

블로거에게도 돈 버는걸 참여 시켜주고...
블로거에게도 돈 버는걸 공유 시켜주고....
블로거에게도 돈 버는걸 개방 시켜주는거..

이게 웹 2.0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웹 2.0하면서 가장 많이 소개되는게 뭡니까?

아마존에서.. 전문가를 고용한후 서평을 쓰도록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일반사람들의 평론이 더 좋다는것을 아마존이 발견했고..

결국 회사의 서평전문가들을 대부분 해고하고..대신 여기서 남는 돈으로 서평 잘쓰는 일반인들에게 돌려주면서 시작된거 아닙니까?

그리고 웹 2.0의 결정타를 날린게 바로 에드센스였구요..

참여, 공유, 개방,, 그건 대의명분일뿐.. 결국 그 돈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인터넷 업계도.. 어쩌면.. 트래픽을 돈으로 만드는 능력에 의해서 성공과 실패가 갈라진다는 생각이듭니다.

5월달까지만 해도 분명 순방문자수는 야후가 1위였지만 이미 이익면에서는 구글의 완승이었죠.
구글이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트래픽을 돈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에서 최고였다는것이고...

애드센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요.

구글은 자신들의 사이트에서만 트래픽을 내고 거기서만 돈 벌 생각을 한것이 아니라...
적든 많든 트래픽이 있는 어느곳이든 수익을 내겠다는 발상으로 여기까지 온거죠.

결국 구글은 생각하는 발상의 방법에서부터 확실히 스케일이 다릅니다.
인터넷 전체 사이트에서 돈을 얻겠다는건 과거 로마제국의 황제 정도의 스케일이라면..
자기 사이트에서 돈벌겠다는건.. 결국 지역 영주정도의 수준이죠.

이번에 다음이 블로거 뉴스를 통해서 새로운 광고 시스템을 선보이는데..

이제 자기의 사이트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트래픽이 있는 어는 곳에서든 수익을 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네요.

하여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다음까지 블로거가 돈을 벌수 있는 수익 모델을 만들어 놓는걸 보면..

사실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10년안에는 가수나 연기자처럼...

이른바 탑 블로거들의 세상이 열릴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탑 블로거의 RSS 구독자가 10만명이 되어야 하고.. 이게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수 있는 임계점이라고 생각되네요. (그 10만명의 가입자가 생기기까지.. 차곡차곡 한두명씩 구독자가 생기는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블로그에 대한 인식이 확바뀌면서.. 포털을 이용하듯이 RSS를 사용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RSS구독자도 함께 증가할겁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현재의 블로거들 보다.. 오히려 지명도가 높은 연예인들이 더 유리할것 같군요.
언젠가는 연예인들의 주요 수입원이 애드센스가 되는게 아닐까요?

연예인들의 하루 방문자가 이슈가 있을경우 어마어마하게 들어옵니다.
게다가 연예인들의 인기 척도로 까페가입자수보듯이 블로그의 RSS 구독자수로 평가하는 날이 오면...
수많은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서 서로 RSS 구독자가 될려고 경쟁이 붙겠죠.

또한 연예인 방담의 형식으로 이런 기사도 나올수 있을 겁니다.

"인기 정상의 연예인 A 씨 충격적인 열애설이 전국을 휘몰아쳤는데요. 근데 연예인 A씨가 운영하는 블로그 방문자수가 하루만에 300만명을 돌파하며 애드센스 수익도 덩달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군요. 단 하루만에 무려 천만원의 수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연예인 A씨는 이 상황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겠다는 소식입니다."

덧말:저의 블로그에서는 IT와 관련된 흥미롭고 재미있는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구독을 결정하시는데 참고 할만한 관련 글들을 링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IT와 관련된 글들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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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