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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유는 1958년 6월 10일 이와테 현의 외곽지역인 카마이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 게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미술과 음악과 같은 예능 분야에 조예가 깊었는데 이 덕분에 그는 공부 이외에도 여러 예능 활동을 하느라고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서예와 그림까지 공부하면서 그는 게임 크리에이터가 갖춰야 할 기본능력을 이미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는 이때까지의 모든 예능 활동이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는 그때까지 게임이라는 것 자체를 몰랐던 시절이었다. 자신은 그저 아버지처럼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스즈키 유는 오카와마 공과 대학에 입학해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된다. 대학생 초기에 그는 음악에 빠져들어서 기타리스트로 밴드 생활을 한다. 그는 이때 전문 기타리스트가 될까도 생각해 봤다고 한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일본의 미야모토 시게루(마리오의 아버지)와 사카구치 히로노부(파이널 환타지의 크리에이터)가 모두 다 대학시절에 밴드 생활을 했고 프로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롭다. 정말 훌륭한 게임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을 잘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는 스페이스 해리어에 들어가는 음악을 직접 작곡하기도 하였는데 그의 음악수준도 프로급 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스즈키 유는 대학 재학 시절에 애플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서는 음악은 잊은 채 곧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든다. 원래부터 무엇인가를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이때부터 프로그래밍 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퐁과 위저드리를 하게 되고 게임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한다. 전자 공학도인 스즈키 유는 기계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기계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구현하는 것에 짜릿함을 느꼈다. 기계의 기술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서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측면에서 게임은 그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세가는 당시만 해도 쥬크박스와 같은 여러 가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만드는 회사였고 스즈키 유가 세가에 입사를 결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프로그래머로 1982년도에 세가에 입사를 하게 된다. 스즈키유는 원래부터 오토바이나 자동차 매니아로 스피드광이었다. 그는 회사에도 스포츠 카를 타고 썬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 사원이었다. 그의 이러한 생활자세와 태도가 게임에 반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스즈키 유는 자신이 오토바이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 느끼는 실제 느낌을 게임으로 최대한 구현하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하면 조이 스틱과 버튼 그리고 화면으로 이루어지는 정형화된 모습이었다. 그는 단지 게임 캐릭터를 조이 스틱으로 컨트롤하는 아케이드 머쉰으로는 스피드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임 유저가 실제 오토바이를 타는 느낌을 그대로 체감 하도록 하기 위해서 스즈키 유는 실제 오토바이와 똑 같은 모형의 아케이드 머쉰을 개발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체감형 아케이드 머쉰으로 불리 우는 행온이다. 처음 행온을 기획할 때만 해도 세가에서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제 입사 1년 차의 신인 급의 사원이 기획을 해서 가져온 게이 기존의 아케이드 게임보다 3~4배가 넘는 제작비용이 드는 게임을 만들려고 하니 경영진으로써는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이미 세계적인 명품 자동차인 페라리로 출퇴근을 하며 꽤 자신감 넘치고 심지어 건방진 사원으로 까지 불렸던 스즈키 유는 참으로 건방지게도 경영진을 찾아가 내 월급을 깎으라면서 행온 게임 개발을 강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만만함이 오히려 경영진의 마음을 놓이게 했던지 행온은 그가 당초 계획 했던 그대로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1985년에 최초의 체감 머신인 행온이 등장하게 된다. 행온은 기존의 아케이드 머쉰에 대한 관념을 깨드리면서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세가의 경영진은 스즈키 유의 도전 정신을 높이사고 그에게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팀을 조직하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행온을 개발한 팀을 위주로 AM2 연구팀을 1985년도에 조직한다. 그의 AM2 연구팀은 이후 3D 스타일의 스페이스 해리어(1985년)와 세계 최초의 자동차 체감 게임인 아웃런(1986년)을 시작으로 애프터 버너(1987년)를 빅히트 시킴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AM2팀은 세가 내에서 최고의 신임을 받게 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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