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토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6.22 매킨토시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12가지 (18)
  2. 2010.12.01 애플의 실패 극복 스토리 (26)
  3. 2010.04.01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 (18)
흥미로운 사실들2011.06.22 09:30
1. 매킨토시의 시작은 게임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애플의 회장이었떤 마이크 마쿨라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교수출신인 제프 라스킨에게 500달러짜리 게임기를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이에 제프 라스킨은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다시 제안을 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2. 상표권 침해를 피하기 매킨토시의 철자를 다르게 불렀다.
 




매킨토시는 원래 사과의 한종류인 McIntosh로부터 가져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타자하기가 힘들고 오디오 제조회사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철자를 Macintosh로 바꾸었다. 하지만 철자를 바꾸어도 상표권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고 협상을 통해서 MACINTOSH라는 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3.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코드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킨토시는 원래 제품명이 아니라 코드명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코드명 대신 자전거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자전거의 발명으로 인간의 이동속도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듯이 컴퓨터가 생각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매킨토시의 코드명을 자전거로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자전거가 바보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스티브 잡스는 결국 자신의 고집을 포기해야 했다.


4. 스티브 잡스가 임원진에게 지지를 받은 것은 눈물덕분이었다.



매킨토시는 제프 러스킨이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스티브 잡스가 중간에 합류하면서 두 사람사이에 파워싸움이 시작된다.  스티브 잡스를 탐탁치 않게 여긴 제프러스킨은 당시 회사의 사장이었던 마이크 스콧에게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이끌어서는 안되는 10가지 이유를 적어 보냈고 회장인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잡스와 제프러스킨중에서 책임자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눈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결국  스티브 잡스 밑에서는 일하기 싫어했던 제프러스킨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5. 스티브 잡스가 팀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비전”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프로젝트를 맡은 것은 단순히 눈물만은 아니었다. 사실 제프러스킨과 스티브 잡스가 생각하는 매킨토시는 완전히 달랐다. 제프러스킨은 제품가격이 천달러를 넘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형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저장장치도 테이프레코더를 고집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신형프로세서에 플로피디스크를 채택하려고 했다. 메모리 용량도 더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킨토시의 원조 멤버들은 제프러스킨과 친구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 대부분은 스티브 잡스를 지지하였다.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의 비전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팀은 하나의 변방 프로젝트에 불과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합류한 이후 애플2 컴퓨터의 전원장치를 개발한 로드홀트와 애플2컴퓨터의 디자인을 맡은 제리마녹등을 영입하면서 매킨토시팀은 애플에서 주목받는 프로젝트로 변하였다.  매킨토시의 아버지는 누군가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지만 매킨토시의 핵심개발자인 앤디 허츠펠드에 의하면 제프러스킨의 매킨토시와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제프러스킨은 마우스 자체를 끔찍히 싫어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팀원들에게 소외당했다고 한다. 반면에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매킨토시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밝히면서 이런 논쟁도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6.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팀이 건물에 입주하기전에 퇴마사를 부르려고 했다. 

애플2 컴퓨터 팀이 사용하던 건물인 밴틀리 드라이브로 매킨토시팀이 이전을 하게 되자 스티브 잡스는  애플 2 팀이 불순한 기운을 남겨두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퇴마사를 불러서 악령들을 쫓아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스스로 그 계획을 포기한다.



7.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는 기판까지 아름다워야 했다.




스티브 잡스는 아름다움에 집착하기로 유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내부의 부품배치를 보면서 이러 저런 평가를 내렸다.  그러자 이에 화가난 개발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누가 PC 보드의 모양까지 신경씁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이지 아무도 PC보드를 꺼내보지 않는다구요.”

이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본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본다고. 비록 그것이 케이스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이 가능한 아름답기를 바래.. 위대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뒷면 형편없는 나무를 쓰지 않아 !”

스티브 잡스는 5천달러를 들여서 보드를 새로 디자인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판에 대한 집착은 애플에 돌아온 이후 꽃을 피우게 된다.  위의 맥 프로처럼 애플제품은 내부도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8. 매킨토시 공장을 방문해서 직원들에게 100달러씩을 주었다.

매킨토시가 제조되기 시작한 날 스티브 잡스는 공장근로자와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어서 직접 공장을 방문해서 공장 근로자와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100달러 짜리 지폐를 건내주었다.



9.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스티브 잡스는 리사의 실패원인중 하나를 소프트웨어의 부재라 생각했기 때문에 외부의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적극 협력하기 위해 직접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가서 빌게이츠에게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내노도록 설득하였다. 처음에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매킨토시에 매우 시큰둥해있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에게 직접 애플에 방문해서 개발중인 매킨토시를 보라고 초대를 하였고  애플본사에서 매킨토시를 보게된 빌 게이츠는 한눈에 반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매킨토시의 프로토타입을 SAND 즉 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매킨토시를 좋아했다. 빌 게이츠는 회사의 최고 인재들을 매킨토시팀에 배치해서 응용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이때 만든 프로그램들이 바로 MS 오피스 시리즈로 발전하게 된다.



10. 매킨토시의 실패 스티브 잡스를 내쫓게 되다.

스티브잡스가 애플에 쫓겨나는데는 여러 정치싸움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결론은 결국 하나이다. 매킨토시의 판매부진이 스티브잡스에게 치명타가 되어서 애플에서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11. 스티브 잡스, 애플과 어도비의 구세주가 되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발굴한 회사중에는 어도비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와 프린터를 결합한 제품을 선보이려고 했지만 마음에드는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수소문끝에 스티브 잡스는 이제 막 차고에서 시작된 어도비를 알게 된다. 어도비는 인쇄품질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도비는 직접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접목한 하드웨어기기를 만드려고 했다. 존워녹과 척 게슈케에게 하드웨어 부분을 포기하고 소프프트웨어 전문회사가 되라고 충고해준다. 또한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은 1인치당 1,200도트 프린터에서 사용이 가능했는데 이를 애플이 준비하고 있는 레이저 프린터에 맞게 1인치당 300도트 프린터에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접목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250만달러를 투자해서 어도비의 주식 20%를 인수하였고 포스트 스크립트에 대해 거액의 라이센스를 지불해준다. 그후 어도비,애플, 캐논은 은 공동작업을 통해서 포스트스크립트기술이 들어간 레이저 프린터를 완성하게 된다. 레이저 라이터는 6,995달러의 고가였지만 컴퓨터 화면속의 텍스트와 그림을 그대로 인쇄할수 있는 혁신덕분에 데스크탑 전자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존 스컬리는 애플에 스티브 잡스가 없던 시절도 결국은 스티브 잡스의 회사였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쫓겨난 후 매킨토시이 판매량이 늘어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제품이 바로 레이저 라이터였다. 레이저 라이터 역시 매킨토시 만큼이나 사내에서는 제품의 성공가능성을 낮게 보았지만 결국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와 레이저라이터덕분에 세계 1위의 PC회사로 군림하게 된다.


12. 존 스컬리 애플 역사 최악의 계약을 실행하다.



존 스컬리는 애플 역사상 전략적으로 세가지 실수를 한다. 첫째는 빌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를 다른 회사에 라이센스를 해야한다는 충고를 무시한점 둘째는 애플이 자제적으로 만든 맥베이직에 대해서 빌 게이츠가 애플2로 베이직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맥베이직을 폐기해버렸다는 점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컴퓨터 역사에 길이 남는 가장 멍청한 계약으로 손꼽히는데 바로 마이크로소프트가 2년간 MS워드와 멀티플랜(액셀)을 다른 플랫폼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애플 고유의 아이콘과 디스플레이 화면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음데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존 스컬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를 통해서 자사의 제품을 베꼈다는 사실에 분노해서 빌게이츠에게 따지러 갔다가 이 어이없는 계약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존 스컬리는 당시 계약의 의미를 몰랐다고 한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2년간이 독점한다는 사실만 좋아했을뿐 자사 고유의 인터페이스를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중대한 의미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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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야기2010.12.01 08:22

1. 애플 1 컴퓨터 애플 2 컴퓨터의 초석이 되다.





애플 1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들l진 제품으로 애플 신화의 시작이 되는 작품입니다만 판매량은 175대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두명이서 시작한 회사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애플1 컴퓨터를 유럽에 팔생각으로 샘플까지 보냈던 스티브 잡스의 야망은 충족시켜주지 못했죠. 스티브 잡스는 애플 1 컴퓨터의 문제는  한마디로 메인보드만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전문적인 지식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압기나 키보드 같은 장치들을 구입해서 따로 완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판매량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수 있는 컴퓨터를 구상합니다.  완제품 형태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죠. 이때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퀴진아트 믹서기에 영향을 받아서 플라스틱을 채용한 디자인을 내놓습니다. 이것은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서 최초이자 개인용 컴퓨터 디자인의 유형을 제시한 큰 사건이 됩니다.  애플 1에서 애플 2컴퓨터로의 진화는 분명합니다. 애플 1이 컴퓨터 애호가들에게나 통하는 제품으로 판매에 한계가 있었으니 일반 대중 누구나 친숙한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만들어진 제품이 바로 애플2 컴퓨터 였던겁니다.

2. 리사의 끔찍한 실패  매킨토시를 탄생 시키다.




리사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그래픽 운영체제를 채택한 제품으로 의의가 있지만 문제는 두가지 문제로 끔찍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리사는 가격이 9,995달러였고 정작 소프트웨어가 부족했습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잘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소프트웨어문제를 해결할려는 과욕을 부립니다. 외부 업체협력없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다가 극심한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리사는 실패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가격문제와 소프트웨어 문제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매킨토시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채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 2 가격의 절반인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죠. 스티브 잡스의 현란한 말솜씨 잘알고 있지 않습니까? 부품 제조사를 찾아가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협상을 하였습니다. 모토로라의 CPU는 9달러에 공급받기로 했는데 이는 원래 모토로라가 제시한 가격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가격이었답니다. 이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는 1955달러 가격에 겨우 맞출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스컬리가 애플2 컴퓨터와 경쟁할 수 있다는 이유로 2500달러에 판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도 리사에 비해서 가격은 훨씬 싸진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리사의 실패에서 스티브 잡스가 깨달은 또다른 교훈은 바로 소프트웨어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완성되기 전에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달라고 하죠. 그때 접촉한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스로만 성공한지 알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를 통해서 일대 도약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대한 노하우를 매킨토시에서 쌓게 되거든요.  로터스 같은 메이저 업체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어도비처럼 차고에서 이제막 시작된 회사를 발굴하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라이센스 받고  회사에 25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어도비 성공의 일등공신이 되었죠. 스티브 잡스와 어도비의 관계는 단순히 회사관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하는 사이랍니다.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한 노력은 WWDC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아이폰을 발표해서 더욱 유명해진 WWDC는 전 세계의 개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서 기술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1983년부터 시작한 행사입니다. 애플은 이른바 에반젤리스트를 두고 외부의 개발자가 매킨토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애플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1995년에도 300명의 에반젤리스트가 7,500만 달러의 예산을 가지고 외부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해왔답니다.

3. 실패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아이맥




아이맥은 등장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6주 만에 30만 대가 팔렸고, 1년 동안 2백만 대나 팔리더니, 나중에는 60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은 3억 950만 달러의 흑자회사로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아이맥은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애플은 저가형의 맥 NC를 개발중이었습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기전 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돌아온 이후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펼쳤는데 50개의 프로젝트중에서 단 10개만이 살아났는데 다행히 맥 NC는 스티브 잡스의 선택을 받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맥 NC를 선택한 이유는 디자인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입니다.  맥 NC의 프로토타입을 자신의 사무실에 놔두고 감탄을 했다죠. 그런데 NC는 래리앨리슨이 주창한 네트워크 컴퓨터의 개념인데 안타깝게도 NC는 쫄딱 망하고 맥 NC역시 사라질 운명에 처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중심의 매킨토시 개발을 지시합니다. 이때 선택된 인물이 바로 조너선 아이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온후 1년동안 자신을 방치하자 사직서를 들고 다녔던 조너선 아이브였는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의 능력을 알아보고  맥NC의 개념을 확대해서 인터넷에 최적화된 컴퓨터 즉 아이맥 개발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이른바 반투명 컴퓨터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적자 상태의 애플을 구원하게 됩니다.

4. 하드웨어에서 실패한 스티브 잡스 소프트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의기양양하게 넥스트를 창업합니다 넥스트 스테이션을 만들지만 정부기관을 제외한 판매량은 5만 대에 그쳤고 넥스트에서 만든 또 다른 컴퓨터인 넥스트 큐브 역시 실패했습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야 맙니다. 스티브 잡스는 1994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두 배 뛰어난 제품은 만들기도 힘들고, 운이 좋아서 1.33배나 1.5배 정도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봐야 6개월이면 따라잡히고 만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죠.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접목합니다. 원래 스티브 잡스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 애착이 강하고 하드웨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올인한 이 부분에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고 나중에 4억달러라는 거액에 넥스트를 애플에 팔수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고향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중심적으로 사고하면서 애플을 부활시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아름다운 상자안에 맥 OS X를 파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MP3 플레이어 업체들의 형편없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보고서는 아이팟으로 MP3플레이어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는등 철저히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죠. 그래서 언론에서는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합니다. 애플이 다망해가는 시점에서 소프트웨어를 들고 애플을 구원했다는 거죠. 하드웨어사업에서의 실패 그리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고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2막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애플 디자인의 아름다움 실패에 있다.


애플의 디자인은 왜 아름다울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무수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환경 덕분입니다.  애플은 실제와 똑같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제품을 평가합니다. 실제로 애플 디자이너들은  엄청난 실패작들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답니다. 오히려 실패작을 만드는 것에 기뻐하는데 그 이유는  실패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애플 디자인팀은 틀린것이라도 추구하고 이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험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당장의 실패가 시간과 비용을 낭비시키는것 같지만 결국에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결국 디자이너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합니다. 실패작을 연발해도 좌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찾은 것이라며 좋아하는 문화야 말로 애플 디자인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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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10.04.01 08:17

저는 우리나라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러가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IT 분야에서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되는게 우리가 한단계 도약하지 않으면 지금 일본이 겪는 문제를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가격 경쟁력 역시 한 몫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 경쟁력이라는 문제에서 보면 나중에 우리는 중국이라는 경쟁자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일본이 한국기업때문에 요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한국은 나중에 중국때문에 더 크게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조업의 숙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조업의 생산기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지금은 한국과 대만으로 넘어오는데 결국지금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제조업 산업의 우위는 중국으로 넘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업을 보면 그런 전조가 보입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세계 제1위의 조선강국이라면서 그 신화를 찬양하는 글들을 수없이 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조선업으로  검색하면 중국에 의해서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를 진단하는 기사가 수두룩합니다.  조선업 신화가 이렇게 금방 위기론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 역시 중국이라는경쟁자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겁니다. 다행히 지금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너무 조급해 하지말고 대책을 세우면 될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선발주자가 후발주자에게 역전당하는 것을 보면 일등보다 성능이 좋은데 가격이 비슷하면 일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이래서 2등이 편한겁니다. 1등이 만든제품에다가 기능을 몇가지 추가하고 가격은 싸게 만들면 되니 고민할것도 없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중국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들을 잘 분석하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즉 후발주자보다 성능도 부족하고 가격도 비싼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그 토록 강조하면서 한국이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업으로 손 꼽는 애플과 닌텐도가 있습니다.

애플과 닌텐도는 짝퉁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짝퉁을 만들었다고 해봐야 별 타격이 없지요. 또한 경쟁 회사가 더 좋은 스펙과 싼 가격을 무기로 공격한다고 해도 그리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소프트웨어 파워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소프트웨어를 팔기위해서 하드웨어를 만드는 느낌까지 드는 회사들입니다.  애플과 닌텐도는 소프트웨어의 힘을 보여줍니다. 특히 하드웨어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지요. 사실 애플과 닌텐도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보면 항상 그럽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하드웨어 가지고 왜 그렇게 찬양을 하냐고? 애플과 닌텐도의 힘은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힘에서 나온다고 해도 스펙중심으로 하드웨어를 평가하는 그들에게는 그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습니다.

애플의 아이팟을 보십시오. 아이팟 보다 가격이 싸고 좋은 MP3 세상에 수도 없이 넘쳐납니다. 짝퉁 역시 너무나 많구요. 하지만 아이팟은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팟의 힘은 무엇일까요?

하드웨어의 성능이 아니라 아이튠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덕분이지요.

지금의 아이폰도 보십시오. 아이폰보다 좋은 하드웨어 스펙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자사의 하드웨어 스펙보다 뛰어난 스마트폰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하던가요?  아이폰 현상을 보면서도 스펙중심주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소프트웨어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애플이라는 회사를 계속 무시하게 될겁니다.

이는 닌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당장 누군가 닌텐도 DS보다 훨씬 뛰어난 휴대용 게임기를 내놓은다고 칩시다. 그런데 닌텐독스나 포켓몬스터같은 소프트웨어 없이 닌텐도와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닌텐도 Wii같은 모션 센스 컨트롤러를 넣고 훨씬 뛰어난 그래픽 기능으로 무장한 게임기를 내놓았다고 쳐봅시다. 젤다의 전설과 슈퍼마리오 같은 소프트웨어 없이 닌텐도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겠습니까? 닌텐도를 이기려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경쟁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팝니다. 닌텐도의 하드웨어 사업부는 자신들은 소프트웨어 사업부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라고 까지 합니다.  닌텐도는 게임기 경쟁을 펼칠때마다 결국 승부는 소프트웨어에서 결정난다고 합니다.

애플의 흥망성쇠를 봐도 소프트웨어의 힘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놓고 애플 2, 코모도어, TSR-80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1979년 오늘날의 엑셀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원조가 되는 비지캘크(VisiCalc)가 애플 2로 등장하면서 사실상 개인용 컴퓨터 전쟁의 승자가 됩니다. 비지캘크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는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서 그저 고급스런 사치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재무관리를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비지캘크가 등장하자 개인용 컴퓨터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비지캘크가 애플2로 나온건 하드웨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컴퓨터 업체의 성공을 추적한 로버트 크린즐리는 우연의 왕국이라는 책을 통해서 결국 회사의 성공이라는 것은 결국 노력보다는 행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할까요?  비지캘크를 제작한 댄 브리클리는 유일하게 빌릴 수 있었던 컴퓨터가 애플2I였을뿐 그가 특별히 애플 2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로버트 크린즐리는 애플 2가 컴퓨터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댄 브리클리가 우연히 애플 2를 입수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그리고 매킨토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84라는 환상적인 광고와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 덕분에 매킨토시는 출시 며칠간은 인기를 끌었습니다만 금방 판매량이 떨어집니다.  정작 매킨토시를 구입했지만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맞는 그래픽 소프트웨어등이 나오면서 디자이너와 같은 전문직들에게 사랑 받는 컴퓨터가 되면서 애플도 겨우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게임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리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 VCS 2600은 출시 초기만 해도 판매량이 부진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창업자인 놀런 부시넬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해고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 일본 타이토 사에서 발매된 소프트웨어인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타리의 VCS 2600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기사회생했습니다. 닌텐도가 패미컴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라는 소프트웨어 덕분이었습니다.



컴퓨터와 게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결국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만나게 됩니다 .   애플과 닌텐도가 아니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만으로 전세계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를 지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역시 소프트웨어 힘을 가질때 미래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국가의 격을 높인다면서 이런 저런 정책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정말 우리나라가 한단계 올라가고 싶다면 우선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하드웨어힘만으로  후발주자와 경쟁한다면  후발주자들의 매서운 추격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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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