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9회)



애플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제품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팟입니다. 아이팟에는 애플의 놀라운 기술과 누구나 다루기 쉬운 사용자 편의성, 그리고 굉장히 멋진 디자인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그래온 것처럼 말이죠. 만약 누군가 애플이 왜 세상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이팟을 들어 올릴 겁니다.

- 스티브 잡스


2001년 2월, 애플 내부에 비밀팀이 하나 결성됐다. 당시 애플의 실적은 1억 9,5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저가형 컴퓨터로 무장한 PC 업체들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애플은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비밀팀의 임무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새로운 MP3에 대한 아이디어를 애플의 경영진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성과에 따라 애플은 컴퓨터 전문기업에서 소비자 가전기업으로 변신을 꾀할 생각이었다. 


비밀팀은 애플 정식직원인 Stan Ng와 외부 파트너 토니 파델, 단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파델은 필립스에서 휴대용 기기를 만들었고, 리얼네트웍스 음악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경력 덕분에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드는 데 최적의 인물이었다. 원래 토니 파델은 디지털 뮤직과 관련된 제품을 만들어 보고자 직접 Fuse Networks라는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를 받지 못하고 사업은 정체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여러 회사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이 역시 번번이 거절당한다.

 

이런 와중에 애플에서 8주 동안 진행될 계약을 하나 맡기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비밀이 엄격한 애플은 계약 전에도 파델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파델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정도만 전했을 뿐이다. 계약 후에야 애플이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는 그가 예전부터 꿈꾸던 바로 그 일이었다. Stan Ng가 기존의 MP3 플레이어 시장을 꼼꼼히 체크하는 동안 토니 파델은 시제품을 완성했다. 


비밀팀은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단 두 달 만에 스티브 잡스를 포함한 중역들 앞에서 자신들의 결과물을 발표했다. 이때 토니 파델은 한 가지 꾀를 내 시제품을 일부러 세 개로 만들었는데, 그가 진심을 담아서 만든 시제품은 하나였지만 일부러 세 개를 선보여서 그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뭔가 부족하고 어정쩡한 시제품을 내놓고, 숨겨 놓은 진짜 카드는 마지막 세 번째에 보임으로써 좀 더 효과적으로 그의 시제품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그가 생각한 대로 반응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제품을 보여줄 때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세 번째 시제품을 보여주자 바로 마음에 들어 했다. 시제품을 보고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할 결심을 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시즌 안에 제품을 완성하라고 엄명을 내린다. 이는 단 9개월 만에 제품 개발을 완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으로 만드는 상품을, 그것도 시장을 압도할 만한 최고의 제품으로 완성하라는 것은 시간상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계획보다도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의 저력과 훌륭한 전략 덕분이다. 애플 내부에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자가 있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팀도 보유하고 있었다. MP3 플레이어 개발팀의 핵심적인 멤버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회사 내부에 있는 수백 명의 개발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했다. 그러나 내부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애플은 원래 내부에서 개발된 기술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팟을 만들 때는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토니 파델만 해도 외부에서 데려온 파트너였지만 아이팟 개발의 총책임자로 임명될 정도였다. 토니 파델 역시 애플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휴대용 음악기기를 개발한 적이 있는 포털 플레이어(Portal Player)사와 접촉해서 아이팟을 공동으로 제작할 것을 결심한다. 토니 파델은 포털 플레이어사를 직접 찾아가서 이번 프로젝트가 애플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며 앞으로 10년 후 애플은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음악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애플의 적극적인 태도를 확인한 포털 플레이어 직원들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애플의 일에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자 스티브 잡스 역시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더니 나중에는 매일같이 개발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광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귀를 가졌던 만큼 음질 부분에서 많은 의견을 내었다. 인터페이스나 작동 방식에도 관여했는데 특히 버튼의 숫자를 최소화하도록 지시했다.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쓴 스티브 잡스는 제품 표면의 광택까지 체크할 정도였다. 그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메뉴의 반응속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애플이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는 5기가바이트의 용량을 자랑하는 미니 하드디스크를 넣을 계획이었는데, 무려 천 곡의 음악을 넣을 수 있는 방대한 저장 공간이다. 홍보 역시 천 곡의 음악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던 참이었다. 천 곡의 노래를 저장한 후 이를 쉽게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메뉴 반응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팟’이라는 이름을 최종 결정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비니 치에코(vinnie chieco)라는 프리랜서에게 새로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의 이름을 의뢰하였다. 이때 휴대용 음악기기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각종 디지털 기기를 매킨토시에 연결시킨다는 애플의 디지털 허브 전략을 소개했다. 비니 치에코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허브’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그는 휴대용 음악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사용한다는 말에 Pod(우주선에서 분리 가능한 작은 비행선)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런 생각은 실제 애플이 만들고 있던 음악기기를 보고는 더욱 확고해졌다. 흰색의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를 보는 순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선 안으로 착륙하려는 작은 비행선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Pod이라는 단어를 결정한 비니 치에코는 여기에 애플의 제품명에 애용되었던 i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가 스티브 잡스에게 제안한 최종 제품명은 ‘iPod’이었다. 비니 치에코는 iPod 외에도 수십 가지의 제품명이 적혀 있는 문서를 스티브 잡스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스티브 잡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iPod으로 제품명이 결정됐음을 알렸다.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하지만 발매 3개월을 앞두고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아이팟을 작동하지 않아도 3시간만 지나면 배터리가 자동으로 방전되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발자들은 8주 동안 밤낮없이 매달렸고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오리지널 아이팟은 하드디스크를 사용했던 만큼 기기에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음이 튀는 문제가 발생했다. 애플은 사용자가 음악을 선택하면 하드디스크에서 메모리로 데이터를 이동시킨 후 메모리에서 음악이 플레이되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팟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2001년 10월 23일은 최악의 시기였다. 911 테러로 미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었고, 닷컴붕괴와 함께 경제 사정도 밝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회사 사정역시 좋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500만 달러의 홍보비용을 투입해서 아이팟을 출시하였다. 


아이팟이 처음부터 큰 히트를 친 것은 아니었다. 2001년에는 12만 5천 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열혈 애플 마니아들이 아이팟을 구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면서 판매량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특히 아이팟에 반한 몇몇 고객들은 직접 아이팟을 위해 자체적인 홍보물을 만들 정도였다. 마니아들의 노력과 입소문 덕분에 아이팟은 발매된 지 2년 만에 130만 대가 넘게 판매되면서 인기 제품의 반열에 오른다. 


애플이 음악 산업 전체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애플에서 만드는 제품은 오직 매킨토시에서만 돌아간다는 정책을 폐기했다는 점이다. 아이팟은 원래 매킨토시를 통해서만 음악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3세대 아이팟에서 윈도우와의 호환성을 대폭 개선하면서 아이팟의 판매량에 가속도가 붙었다. 3세대 이전만 해도 아이팟은 매킨토시 사용자들에게나 한정된 틈새시장용 제품에 불과했지만 윈도우를 본격 지원하면서 전체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이팟 3세대가 등장하기 전 1년 동안의 판매량은 67만 3천 대에 불과했지만, 이후 1년 동안의 판매량은 218만 대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애플이 이렇게 윈도우를 적극 지원하는 전략을 펼친 것은 애플이 그동안 지켰던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로 결합하는 삼위일체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이 과거와는 다르게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회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이팟이 잘 나가자 수많은 업체들이 아이팟을 모방했다. 아이팟보다 가격이 싼 제품이 쏟아지자 많은 전문가들이 매킨토시가 몰락했던 것처럼 그렇게 쓰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빌 게이츠 역시 아이팟의 성공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매킨토시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애플에게는 다른 회사가 가지지 못한 온라인 음악상점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있었다. 세계 5대 음반 메이저 업체들의 음악을 한곳에서 서비스하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는 아이팟이 유일했다. 2003년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오픈할 때만 해도 합법적으로 음악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아이팟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라는 기계 하나를 팔았지만 애플은 음악을 듣는 방식, 즉 경험을 판 것이었다. 


만약 애플이 하드웨어로 승부했다면 아이팟은 매킨토시처럼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애플의 아이팟은 하드웨어에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결합함으로써 다른 기기들이 넘볼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실제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결합된 아이팟은 생활 그 자체를 바꾸었다. 이전에는 음악이 듣고 싶으면 상점까지 가서 음반을 구입해야 했지만, 아이팟 이후에는 인터넷으로 음원을 다운로드받아 바로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성능이 좋고 값이 싸다는 이유가 아니라 음악을 쉽고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애플의 제품을 선택했다. 특히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에서 구입한 음악은 오직 아이팟에서만 재생되었기 때문에 이미 구입한 음악이 아까워서라도 다른 기기로 떠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디지털 음원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통합해낸 아이팟은 2009년 시장점유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독주를 하고 있다. 아이팟은 5년 반 만에 1억 대를 돌파하였고, 2010년 6월까지 2억 6,949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이팟의 성공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애플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물리쳤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를 통해 PC시장을 장악한 이후 IT업계의 절대 권력자였다. 막강한 자본을 가진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 분야에 진출하든 기존의 강자를 물리치고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절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지 말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팟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던 천하무적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준(ZUNE)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 등장할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준 사업의 책임자였던 제이 알라드(J Allard)는 준을 개발하는 직원 230명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미학이 전혀 없다면서 회사의 창조성을 비웃는 스티브 잡스의 동영상을 보여 주면서, 스티브 잡스가 잘못을 인정하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 함께 싸우자는 말을 덧붙였다. 


또다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티브 잡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준은 시장 점유율 두 자릿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고전 중이다. 조사 전문기관인 NPD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0년 5월 미국시장에서 아이팟의 시장 점유율이 76%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 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고작 1%에 머물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 보여준 자신감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이다.


아이팟이 준을 상대로 승리한 것은 단순히 사업 하나가 성공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애플은 PC가 아닌 소비자 가전업체로 변신할 수 있었고, 또한 PC가 아닌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라는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아이폰의 탄생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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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IT 삼국지2013.12.10 12:30

IT삼국지(21) 


애플 아이팟과 Zune의 경쟁



애플의 아이팟이 출시 3년만에 천만개를 넘게 판매하며 승승장구하자 휴대용 음악시장이 돈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마이크로소프트는 2004년 휴대용 음악시장에 진출을 결정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매킨토시를 공략하던 똑 같은 방식으로 아이팟과 맞섰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직접 개발하는 수직 통합적 모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해서 애플을 공략하기로 결정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처럼 하드웨어 연합군을 모아서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PC와 다른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에 대항하기 위해서 냅스터와 야후등 온라인 컨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연합군으로 모셔왔다는 것이다.  애플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많은 휴대용 업체들이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손쉽게 연합군을 모을 수 있었다. 한국의 레인콤과 삼성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연합군에 속속합류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와 온라인 서비스 업체에게 미디어 콘텐츠를 재생해주는 한편 복제 방지 기술이 들어가 있는 솔루션인  플레이 포 슈어(Play for Sure) 솔루션을 제공했다. 애플에 대한 반동 효과덕분에 수 많은 업체들과 반애플 진영을 구축한 마이크로소프트는 폐쇄적인 애플의 아이팟은 개방적인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패하게 될 것이라면서 자신만만했다.. 2005년 빌게이츠 역시 아이팟은 과거 한때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했던 매킨토시처럼 그 운명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전통적인 휴대용 음악시장의 가장인 소니가 그동안 자체적인 포맷을 버리고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자 애플의 주식이 폭락하기 까지 했다. 이렇게 경쟁이 격화되자 언론에서 애플의 미래에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애플은 스스로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2005년 CES에서 빌 게이츠가 플레이 포 슈어 전략을 소개한 며칠 후 애플은 아이팟 셔플을 내놓았다. 기존에 애플은 저장기기로 하드 디스크를 고집했고 고가형 제품만을 발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팟 셔플은 애플은 최초로 플래시 메모리를 채택한 제품으로 단돈 99달러에 판매된 저가형 모델이다.  하지만 아이팟 셔플은 액정을 제거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원하는 곡을 선택할 수 없고 음악 듣기 이외에는 각종 부가기능들이 빠져있었기 떄문에 실패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Life is Random이라는 재치있는 문구로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친 애플의 노력 덕분에 2005년 상반기  미국 플래시 타입의 MP3시장에서 점유율 46%를 차지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이팟 셔플은 애플이 MP3 플레이어 시장의 독점을 알리는 일종의 전주곡이었다. 애플은 하드디스크를 채택한 고가모델만을 내놓았기 떄문에 2004년 시장점유율은 35% 정도였다.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MP3 시장을 고스란히 다른 업체에 양보하고 있던 애플은 플래시 시장 마저도 장악할 계획을 세웠고 그 시작이 아이팟 셔플이었던 것이다.


애플의 야망은 2005년 9월에 아이팟 나노가 등장하면서 본격화 된다.  아이팟 나노는 애플 특유의 작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었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랍게 한 것은 2GB의 플래시 메모리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199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아이팟 나노의 가격은 경쟁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경쟁사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할정도로 아이팟 나노의 가격이 저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1GB당 44달러였던 플래시 메모리를 20달러에 공급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이 삼성에서 생산하는 플래시 메모리의 40%를 선구입하는 대신 삼성이 할인된 가격으로 플래시 메모리를 제공한 덕분이었다.. 멋진 디자인에 애플이라는 강력한 브랜드가 결합된 아이팟 나노는 가격마저 저렴하니 애플이 MP3 시장을 장악하는건 시간 문제였다. 출시 된지 17일 만에 백만대를 판매한 아이팟 나노의 활약에 힘입어 2005년 세계시장에서 아이팟의 시장점유율이 50%에 안착하더니 2006년에는 55%에 까지 이르게 된다. 미국시장에서는 아이팟이 시장의 75%를 차지하면서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플레이 포 슈어를 내놓으면서 애플 타도를 외친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모든 전략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토록 애플의 폐쇄성을 비난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이팟의 놀라운 성공신화에 자극받고는 결국 플레이 포 슈어를 포기하고 아이팟을 대항하기 위해서 직접 하드웨어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플레이 포 슈어로 세계에서 수많은 파트너들을 모아놓고서 불과 2년여년만에 스스로 발을 빼는건 스스로 자신들의 실패를 자인하는 동시에 회사의 신뢰에 큰 상처를 주는 행위였다.  플레이 포 슈어를 사실상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준을 내놓자 이번에는 언론에서도 시큰둥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때 윈도우를 통해서 애플을 괴멸 직전으로까지 내몰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애플에 대항하는 제품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롭게 내놓으면 애플 킬러로써 마이크로소프트를 부각하기 마련이었지만 준에 대해서는 MP3 플레이어 시장의 챔피온 아이팟을 꺽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에도 역시 자신 만만했다. 준의 제작을 총 지휘한 사람이 XBOX360으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의 독주를 막아낸 제이 알라드였다. 당시만 해도 제이 알라드는 차기 CEO로 거론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준은 처절한 실패만을 맛보았다.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을때는 처음 준을 내놓았을 때 애플에 대항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조명할 때뿐이었다.  미국의 시장 조사 전문 기관인 NPD에 의하면 2010년 5월 아이팟의 시장점유율이 76%에 이르지만 준은 단 1%에 불과하다고 발표하였다.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오랜만에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


아이팟의 승리는 애플에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이크로소프트 콤플렉스를 타파했기 때문이다. 1997년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를 발표하는 순간은 애플 역사에 가장 굴욕적인 순간이었던데 비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명실공히 IT 세상의 황제로 등극하느 순간이었다. 그래서 1997년 맥월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황제 즉위식과 비슷했고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배아래 있는 속국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없는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을 제패하였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과 정면 승부를 펼치며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을 빼앗으려 했지만 애플은 이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이제 더 이상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킬러라는 말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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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IT 삼국지2013.12.04 07:33


IT삼국지(20) 


아이팟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애플은 처음부터 대단위의 인력을 동원해서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을 진출하지 않았다. 아이팟의 시작은 단 두명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한명은 애플에서 마케팅관련일을 하던 정직원 stan ng였고 다른 한명은 컨설턴트 형식으로 임시 고용한 토니 퍼델이었다.  그런데 Stan Ng와 토니 퍼델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과 비슷한 관계였다.


 애플에서 일한지 6년째가 되는 Stan NG는 파워맥과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기획자로 일을 하였다. 이에 비해서 토니 퍼델은 개발에 능한 엔지니어였다. 원래 토니 퍼델은 필립스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인물이었다. 그가 필립스에서 개발한 PDA는 50만대 이상이 판매되었는데 그는 이때부터 휴대용음악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다. 마침 그의 아이디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리얼네트웍스에서 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6주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들기 위해서 Fuse라는 회사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투자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애플에서는 토니퍼델이 애플의 비밀프로젝트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8주일의 초단기 계약을 제안한다. 토니 퍼델은 계약전만해도 자신이 무슨을 일을 하게 될지 몰랐다. 다만 애플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계약을 한 후에야 토니 퍼델은 애플이 아이튠스와 연동되는 휴대용 음악기기 개발을 위해서 자신을 고용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애플의 경영진은 8 주 동안 Stan NG와 토니 퍼델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고서 MP3 플레이어 시장에 정식으로 진출할지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8주 라는 시간 자체가 촉박하기도 했지만 두사람의 어깨에 따라서 애플은 완전히 다른 회사로 변화할 수 있는 중대한 일인 만큼 둘은 눈을 뜨고 있는 내내 비밀 프로젝트에 물두해야만 했다.  비록 두사람의 비밀 프로젝트였지만 애플 사내에서는 자기업무가 아니라도 직원들끼리 서로 돕는 문화가 있었다. 사내의 모든 직원들과 접촉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STAN NG와 토니 퍼델들은 사내에 돌아다니면 각종 자료와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엄격한 비밀주의 때문에 자신들이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애플 직원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


 작업을 진행 하면서 그들은 제품이 어떠한 형태로 완성되어야 하는지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휴대용 음악기기의 크기는 셔츠나 양복의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여야 했으며 대용량의 음악을 담아야 하기 떄문에 하드 디스크를 넣기로 한다. 2.5인치면 본체크기가 너무 커지기 때문에 1.8인치를 사용하기로 한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애플은 매킨토시용으로 하드디스크를 공급하는 업체인 도시바가 1.8인치 짜리 하드 디스크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 도시바는 정작 자신들이 미니 하드드라이브로 무엇을 만들지 몰랐다. 하지만 애플의 간부인 루빈 스타인은 애플의 휴대용 음악기기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Stan NG는 기존 휴대용 음악기기의 액정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음악기기에서는 적어도 아티스트나 곡의 이름과 연주 시간은 표시가능 해야한다고 확신한 그는 2인치 짜리 패널을 넣기로 결정한다. Stan NG가 애플이 만들어야할 휴대용 음악기기의 모습을 기획하는 동안 토니 퍼델은 직접 시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토니 퍼델은 스티로폼을 잘라서 담배갑 크기로 시제품을 만들었다. 상단에는 곡을 표시해주는 화면이 있고 밑에는 곡을 찾을 수 있는 버튼을 배치했다. 시제품이 상부로부터 허락을 받자 토니 퍼델은 기본 모형에 실제로 작동하는 시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4월이 되자 Stan NG와 토니 파델은 스티브 잡스 앞에서 그들의 계획과 제품들을 직접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애플은 이들의 발표자료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 진출할 참이었다. Stan NG 는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나열하면서 애플이 휴대용 음악 시장에서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그 후 토니 퍼델은 그동안 만든 시제품을 보여주었다. 토니 퍼델이 만든 시제품은 전체적인 모형과 하드디스크와 액정 그리고 배터리와 같은 부품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토니 퍼델은 일부러 세가지 모델을 만들었다.  


그가 전력을 쏟아서 만든 모델은 하나였지만 그 하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나머지 두개를 더 만들었다. 그의 예상대로 그가 첫번째와 두번째로 보여준 모델을 본 스티브 잡스는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리고  토니 파델이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세번째 시제품을 보여주자 스티브 잡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필 쉴러는 회의장을 나가더니 각종 전자기기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각각의 전자기기는 여러 목록들을 편안하게 찾을 수 있도록 스크롤 휠을 채택한 제품들이었다. 필 쉴러는 애플이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에서 음악파일을 찾을 때 휠 스크롤을 통해서 쉽고 간편하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나중에 아이팟의 성공에 일등 공신이 된다. 천곡의 음악을 담는 음악기기인 만큼 사용자들이 원하는 곡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스크롤휠이라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에 빠른 반응속도를 자랑하는 액정성능이 결합하면서 아이팟은 원하는 곡은 쉬우면서도 가장빨리 찾을 수 있는 기기로 명성을 날렸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난  일주일 후 애플은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 진출하기로 최종 결정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최고의 쇼핑 시즌인 크리스 마스 이전에는 발매할 수 있도록 제품을 개발해야한다고 지시한다. 한번도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들어 본적이 없는 애플 개발자들로써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조금은 무리한 작업스케쥴을 내림으로써 애플을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해왔다. 매킨토시를 만들 때 개발자들에게 전화번호부를 던져주고서 본체의 크기는 절대로 전화번호부보다 커서는 안된다고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전화번호부 크기의 컴퓨터를 만든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든 시기였다. 처음에 스티브 잡스의  지시를 받은 개발자들은 황당했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명령을 어길수는 없었다. 결국 온갖 고생끝에 겨우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아이맥의 경우 엔지니어들은 수십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절대 만들 수 없는 제품이라고 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CEO의 명령이라면서 무조건 완성하라고 윽박질렀다.  아이튠스 역시 빠듯한 스케쥴이었지만 개발자들은 이를 완수했고 회사는 한 단계 진보 할 수 있었다.


애플 개발자들은 아이팟을 만들면서 밤샘과 야근을 거듭해야 했다. 하지만 애플 내부에서 모든것을 해결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아이튠스를 개발할 때 처럼 최대한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토니 퍼델은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든 경험이 있는 회사인 포털 플레이어사를 찾아가서 아이팟의 하드웨어 부분을 휴대 전화용 휴대전화를 만드는 픽소와는 소프트웨어 부분을 제휴해서 공동 개발하기로 한다. 토니 퍼델은 포털 플레이어사를 찾아가서 이번 프로젝트가 애플을 완전히 새로게 만들 일이라면서 앞으로 10후면 애플이 음악회사가 되있을것이라고 말하여 직원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토니 파델의 말에 감동한 포털 플레이어사의 직원들은 다른 외부 회사와의 협력도 미뤄두고 애플과의 일에 전력을 쏟게 된다.


애플이 아이팟을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인터페이스였다. 그 다음으로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원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였다. 단순함이야 말로 애플의 전체 제품을 관통하는 개발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은 불필요한 기능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소비자들이 복잡함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히 배려한다. 아이팟에 들어간 버튼은 개발자 스스로 이것이 반드시 필요한 기능인지를 수없이 반문한 끝에 넣은 것이다. 더 이상 뺄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버튼의 수를 줄여나갔다. 덕분에 아이팟은 특이하게도 전원버튼이 없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메뉴버튼도 빼고 싶었지만 하지만 개발자들의 설득에 겨우 넣을 수 있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이 만들어온 시제품으로 원하는 곡을 세번 이내의 버튼 조작으로 찾지 못하면 불같이 화내며 간편한 인터페이스를 강조하였다.


아이팟의 또 다른 자랑은 역시 아이튠스와의 통합이었다. 사실 이점이야 말로 기존의 휴대용 음악기가와 완전히 다른 접근이였다. 일부러 아이튠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아이팟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에 통일감을 주었다. 또한 사용자들은 아이팟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아이튠스로 음악을 옮길 수 있었고 각종 음악파일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었다. 


스케쥴 자체는 빡빡했지만 아이팟 개발은 순풍에 돚단듯 술술 풀려나갔다.  이는 회사내의 각종 부서들의 협력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던 덕분이다. 비록 아이팟의 개발자들이 수십명에 불과하지만 전체 애플직원으로부터 도움을 얻었기 때문에 수천명이 참여한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분위기 덕분에 신선한 아이디어들도 쉽게 생겨났다.  하지만 제품의 최종 완성을 앞두고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아이팟의 이용자들이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동안에도 음악을 감상하 할 수 있도록 8시간 정도의 배터리시간을 제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음악 재생을 3~4시간 정도하면 배터리가 모두 닳았다. 다행히 32MB의 메모리를 추가함으로써 10시간의 재생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프로젝트가 여러 난관에 부딪히자 자신감을 잃은  포털 플레이어사의 개발자 벤 나우스는 제품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조너선 아이브가 이끄는 애플의 디자인팀도 아이팟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휴대용 음악기기의 경우 밖에 들고 다니는 제품인 만큼 기존의 컴퓨터보다도 디자인이 중요한 만큼 애플의 디자인팀은 자신들의 능력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애플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플은 새로운 제조공법을 과감하게 받아들인다.. 아이팟에도 더블 샷(Double Shot)이는 새로운 공정이 들어갔다. 더블 샷은 하나의 제품에 여러 색을 동시에 합치는 기술인데 아이팟 크기에 이 기술을 넣기는 힘들었다. 애플은 크기가 작은 제품에 더블샷을 사용할 줄 아는 업체를 접촉해서 아이팟에도 더블샷을 적용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한 덕분에 이질감이 없는 아름다운 색상의 아이팟을 탄생시킬수 있었다.


제품 막판에 비록 개발자들을 당혹시키는 문제가 발생했었지만 다행히 스티브 잡스가 정한 스케쥴은 지킬 수 있었다. 2001년 10월 23일 스티브 잡스는 대중에게 최초로 아이팟을 공개한다. 스티브 잡스는 주머니에서 아이포드를 꺼내놓고는 프리젠테이션의 대가 답게 아이포드가 얼마나 대단한 제품인지를 소개하였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정말 멋졌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시장에는 휴대용 음악기기가 얼마든지 있었고 339달러라는 가격이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팟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멍청이가 값을 매긴 제품( Idiots Price Our Device), 나는 디스크가 더 좋아 ( I prefer Owning Discs ) 나는 다른 기기가 좋아(Iprefer other devices) 처럼 비아냥 섞인 글들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실제로 아이팟의 판매량은 처음부터 인기를 끈 제품은 아니었다. 2001년 판매량은 고작 16만대에 불과했다. 


애플의 인기는 아이팟을 실제 구입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서서히 퍼져나갔다. 아이팟이 인기를 끄는데는 우연에서부터 시작됐다. 애플 디자인팀은 아이팟의 본체 색깔과 맞추어서 이어폰 역시 하얀색으로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이어폰은 검정색 일색이었기 때문에 하얀색 이어폰은 사람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하얀색 이어폰은 다른 휴대용 음악기기를 듣는 사람과 구별되었고 그만큼 더 특별해 보였다.  길거리에 하얀색 이어폰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아이팟도 홍보가 되었다.  어느덧 하얀색 이어폰은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다. 아이팟이 주머니에 있지만 하얀색 이어폰 만으로도 그 사람이 아이팟의 사용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하얀색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애플 제품을 쓴다는 유대감을 느낄정도였다. 하얀색 이어폰의 위력을 알게된 애플은 사람은 검은색 실루엣으로 처리하는 대신 횐색 이어폰을 강조하는 광고를 만들어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컬트브랜드 아이팟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이팟이 진정한 대중화의 길을 걷는 것은 아이팟이 윈도우를 지원하면서부터다. 이전만 해도 아이팟은 맥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아이팟으로 음악을 옮기기 위해서는 매킨토시가 필요했기 떄문이다.  애플은 그 동안 모든 제품을 매킨토시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각종 기기들은 매킨토시에서만 돌아가도록 했다. 하지만 아이팟을 계기로 애플은 스스로 벽을 깨고 달라졌다. 애플은 2003년 5월 윈도우를 사용하는 PC에서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팟을 공개하는데 이전에 1년 6개월 동안 아이팟이 백만대가 판매됐지만 아이팟 3세대 출시후에는 단 6개월만에 백만대가 팔려나가게 된다. 1년 6개월 후에는 아이팟은 9백만개 판매하면서 어느덧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게된다.

 

아이팟이 음악 산업을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들으며 음악 듣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덕분이었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야 말로 아이팟 성공의 일등공신이며 왜 애플이 강력한 집단인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휴대용 음악기기 업체들은 기기를 파는데 급급했지만 애플은 새롭게 음악을 듣는 경험을 판매했다. 


그래서 애플은 아이팟을 만드는데만 공들인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음악을 구입하고 들을 수 있도록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서비스를 준비했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서비스였다. 5대 메이저 음반사는 IT 업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IT 업체와 협력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5대 메이저 음반사를 한곳에 모아서 음악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당시만해도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5 대 메이저 음반사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세계 최초로 5대 메이저 음반사가 참여하는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를 시작하였다.  


20만곡의 음악을 한곳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자 많은 소비자들이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 서비스에 열광하였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3일만에 백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15개월만에 1억곡을 판매했다. 2005년 온라인 음악시장의 75%의 시장점유을 기록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7년만에 100억곡의 음원을 판매하면서 음악 산업의 혁명을 이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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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아이팟
애플 이야기2010.12.02 08:22



애플은 그동안 수많은 혁신을 이루어냈다. 애플2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했으며, 매킨토시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아이맥으로 USB와 WIFI 같은 신기술을 대중화하였다. 아이팟과 아이튠스는 음악을 듣는 방법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켰고, 아이폰은 휴대폰을 재 발명해서 전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새로운 빅뱅을 불러오고 있다. 애플은 제품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도 업계 전체에 강한 충격파를 선사했다.

애플은 로고부터 다른 회사와 달랐다. 원래 애플의 로고는 공동 창업자였던 론 웨인이 직접 펜으로 사과나무 밑에 뉴튼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애플이 정식회사가 된 이후에 스티브 잡스는 새롭게 로고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지스 맥키너에게 디자이너를 물색해 달라고 했고, 롭 야노프(Rob Janoff)를 소개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절대 귀여워 보이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고 일을 맡긴다.

롭 야노프는 사과 모양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버전의 로고를 그려왔는데 스티브 잡스는 애플2 컴퓨터가 컬러를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로고에도 다양한 색상이 들어가기를 바랐다. 이를 참고로 롭 야노프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 무지갯빛의 화려한 색상이 칠해진 로고를 완성해낸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의미한다는 것에서부터 사과에 독을 넣어서 죽은 천재과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롭 야노프에 의하면 사과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그려야만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체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야노프가 그린 로고는 스티브 잡스의 마음에 쏙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로고에 들어간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게 되면 인쇄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 로고에 3가지 이상의 색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 같은 것이 있었다. 애플 내에서도 회사 로고의 색상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고집으로 무지갯빛 애플 로고가 정식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화려한 색들이 회사를 좀 더 인간미 있게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의 애플을 만들어 놓은 애플2 컴퓨터 역시 컴퓨터 디자인의 혁명을 불러왔다. 애플2 컴퓨터는 업계 최초로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하여 기존의 컴퓨터보다 훨씬 세련된 다자인을 선보였다. 물론 스티브 잡스의 노력의 결과다. 애플1 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조립이었기 때문에 케이스가 필요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마니아가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컴퓨터를 원했기에 누구에게나 친숙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했고, 컴퓨터가 가전제품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소재로 컴퓨터를 만들 결심을 한다. 마침 스티브 잡스는 휴렛 팩커드 출신의 프리랜서 제리 마녹(Jerry Manock)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었다. 키보드와 본체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애플2 컴퓨터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한 덕분에 좀 더 세련되고 산뜻한 디자인이 가능했다. 애플2 컴퓨터의 외형은 당시로는 획기적이었고, 다른 컴퓨터보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 훨씬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그 후 개인용 컴퓨터 업체들은 애플의 영향을 받아서 컴퓨터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애플2 컴퓨터의 성공 이후 스티브 잡스는 더욱더 디자인에 집착하게 된다. 애플이 디자인을 통해서 다른 회사와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좀 더 과감한 시도를 계획한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는다는 각오로 유명잡지를 통해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한다. 백설 공주의 일곱 난장이에서 이름을 딴 제품을 디자인하는 미션을 통해 소니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독일 출신의 하르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를 발굴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하르무트 에슬링어의 회사인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에 월 10만 달러라는 거액과 각종 추가경비를 청구할 수 있는 파격적 조건으로 애플을 위해 독점적으로 일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 후 스티브 잡스와 애플2의 케이스 디자인을 맡았던 제리 마녹, 프로그 디자인은 힘을 합쳐서 이른바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을 완성한다. 케이스의 로고 모양이나 컬러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컴퓨터 표면 처리까지 담긴 애플 내부의 디자인 양식이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이 최초로 적용된 애플2 컴퓨터는 등장하자마자 놀라운 디자인으로 격찬을 들었으며, 1984년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스노우화이트는 매킨토시에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이후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은 10년이 넘는 동안 컴퓨터 업계의 교과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애플2와 매킨토시로 컴퓨터 디자인의 새 바람을 일으킨 애플은 또다시 아이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하얀 베이지색의 컴퓨터 케이스는 애플이 만들어 놓은 표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맥이 바로 그 벽을 깨버렸다. 사탕 같은 푸른 빛깔의 일체형 투명 케이스를 자랑하는 아이맥은 지금까지의 컴퓨터에서는 볼 수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이맥에서 구현한 화려한 색상과 속이 다 보이는 누드 디자인은 단순히 컴퓨터 업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 전체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아이맥은 단순한 히트 상품이 아니었다.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조너선 아이브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라는 게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교 때만 해도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킨토시를 접하면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킨토시에 완전히 반해 버린 그는 누가 이렇게 훌륭한 매킨토시를 개발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는 애플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매력에 빠져든다.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 졸업 후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동으로 설립한다. 이때는 욕조, 변기, 세면대, 빗 등 다양한 소비자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1992년이 되자 애플에서는 디자인 회사인 탠저린에게 노트북과 관련된 디자인을 의뢰한다. 이때 조너선 아이브가 내놓은 디자인에 감명을 받은 애플 디자인팀은 조너선 아이브를 아예 본사로 스카우트하기로 결정한다. 평소부터 애플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던 조너선 아이브는 탠저린이 직접 창업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까지 선택한 회사였지만 당시 애플의 상황은 기대 이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애플에 대해 품고 있었던 환상과 사랑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큰 좌절감을 선사하였다. 회사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을 즈음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에 대한 기대치가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보고 그가 그토록 꿈꾸던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임을 알고 감격했다. 처음부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를 알아본 것은 아니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방치하였다. 나중에야 조너선 아이브의 존재를 알고 면담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이때 조너선 아이브는 바지 뒷주머니에 사직서를 넣은 채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만난 후 그에게 중책을 맡기기로 결정했고,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아이맥이었다. 아이맥의 성공은 흥행성 높은 스티브-조너선 쇼의 시작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는 매일 만나 업무를 이야기할 정도로 밀접한 사이가 되었다.

아이맥으로 단단해진 둘의 밀월관계는 아이팟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아이팟은 휴대용 기기가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뛰어난 색깔 하나가 제품 판매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아이팟 1세대에서 보여준 고급스러운 흰색과 검정색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아이팟 나노의 경우 연필보다 얇은 두께와 작은 크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아홉 가지의 화려한 색상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아이팟이 시장을 독점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애플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어폰이 흰색이라는 것 역시 아이팟이 다른 MP3 플레이어와 구분되는 중요한 디자인이었다. 애플은 단순히 아이팟 본체와 색깔을 맞추기 위해서 이어폰을 흰색으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흰색 이어폰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흰색 이어폰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고 그만큼 멋져 보였다. 길거리에서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끼리는 일종의 유대감이 있었다. 애플 마니아들끼리만 느낄 수 있었던 친밀감이었다. 아이팟 이전에는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라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흰색 이어폰은 애플 마니아라는 징표와도 같았다.

아이팟을 초창기에 구매한 애플 마니아들은 일종의 광고판이 되어 주었다. 흰색 이어폰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아이팟이라는 애플의 새로운 MP3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흰색 이어폰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이팟의 판매량은 더욱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애플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검정색으로 실루엣 처리한 후 흰색 이어폰을 강조하는 영상을 만들어 광고에 적극 활용했다. 흰색 이어폰은 어느덧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다. 애플이라는 쿨한 브랜드는 소수의 멋쟁이가 사용한다는 이미지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팟의 판매량이 늘어나면 애플의 쿨함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우려와 달리 아이팟은 음악의 대명사가 되어 갔고, 학생들 사이에서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모르는 사이 흰색 이어폰은 시대의 아이콘이며,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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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야기2010.12.01 08:22

1. 애플 1 컴퓨터 애플 2 컴퓨터의 초석이 되다.





애플 1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들l진 제품으로 애플 신화의 시작이 되는 작품입니다만 판매량은 175대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두명이서 시작한 회사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애플1 컴퓨터를 유럽에 팔생각으로 샘플까지 보냈던 스티브 잡스의 야망은 충족시켜주지 못했죠. 스티브 잡스는 애플 1 컴퓨터의 문제는  한마디로 메인보드만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전문적인 지식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압기나 키보드 같은 장치들을 구입해서 따로 완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판매량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수 있는 컴퓨터를 구상합니다.  완제품 형태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죠. 이때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퀴진아트 믹서기에 영향을 받아서 플라스틱을 채용한 디자인을 내놓습니다. 이것은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서 최초이자 개인용 컴퓨터 디자인의 유형을 제시한 큰 사건이 됩니다.  애플 1에서 애플 2컴퓨터로의 진화는 분명합니다. 애플 1이 컴퓨터 애호가들에게나 통하는 제품으로 판매에 한계가 있었으니 일반 대중 누구나 친숙한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만들어진 제품이 바로 애플2 컴퓨터 였던겁니다.

2. 리사의 끔찍한 실패  매킨토시를 탄생 시키다.




리사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그래픽 운영체제를 채택한 제품으로 의의가 있지만 문제는 두가지 문제로 끔찍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리사는 가격이 9,995달러였고 정작 소프트웨어가 부족했습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잘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소프트웨어문제를 해결할려는 과욕을 부립니다. 외부 업체협력없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다가 극심한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리사는 실패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가격문제와 소프트웨어 문제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매킨토시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채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 2 가격의 절반인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죠. 스티브 잡스의 현란한 말솜씨 잘알고 있지 않습니까? 부품 제조사를 찾아가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협상을 하였습니다. 모토로라의 CPU는 9달러에 공급받기로 했는데 이는 원래 모토로라가 제시한 가격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가격이었답니다. 이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는 1955달러 가격에 겨우 맞출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스컬리가 애플2 컴퓨터와 경쟁할 수 있다는 이유로 2500달러에 판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도 리사에 비해서 가격은 훨씬 싸진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리사의 실패에서 스티브 잡스가 깨달은 또다른 교훈은 바로 소프트웨어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완성되기 전에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달라고 하죠. 그때 접촉한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스로만 성공한지 알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를 통해서 일대 도약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대한 노하우를 매킨토시에서 쌓게 되거든요.  로터스 같은 메이저 업체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어도비처럼 차고에서 이제막 시작된 회사를 발굴하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라이센스 받고  회사에 25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어도비 성공의 일등공신이 되었죠. 스티브 잡스와 어도비의 관계는 단순히 회사관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하는 사이랍니다.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한 노력은 WWDC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아이폰을 발표해서 더욱 유명해진 WWDC는 전 세계의 개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서 기술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1983년부터 시작한 행사입니다. 애플은 이른바 에반젤리스트를 두고 외부의 개발자가 매킨토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애플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1995년에도 300명의 에반젤리스트가 7,500만 달러의 예산을 가지고 외부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해왔답니다.

3. 실패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아이맥




아이맥은 등장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6주 만에 30만 대가 팔렸고, 1년 동안 2백만 대나 팔리더니, 나중에는 60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은 3억 950만 달러의 흑자회사로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아이맥은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애플은 저가형의 맥 NC를 개발중이었습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기전 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돌아온 이후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펼쳤는데 50개의 프로젝트중에서 단 10개만이 살아났는데 다행히 맥 NC는 스티브 잡스의 선택을 받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맥 NC를 선택한 이유는 디자인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입니다.  맥 NC의 프로토타입을 자신의 사무실에 놔두고 감탄을 했다죠. 그런데 NC는 래리앨리슨이 주창한 네트워크 컴퓨터의 개념인데 안타깝게도 NC는 쫄딱 망하고 맥 NC역시 사라질 운명에 처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중심의 매킨토시 개발을 지시합니다. 이때 선택된 인물이 바로 조너선 아이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온후 1년동안 자신을 방치하자 사직서를 들고 다녔던 조너선 아이브였는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의 능력을 알아보고  맥NC의 개념을 확대해서 인터넷에 최적화된 컴퓨터 즉 아이맥 개발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이른바 반투명 컴퓨터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적자 상태의 애플을 구원하게 됩니다.

4. 하드웨어에서 실패한 스티브 잡스 소프트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의기양양하게 넥스트를 창업합니다 넥스트 스테이션을 만들지만 정부기관을 제외한 판매량은 5만 대에 그쳤고 넥스트에서 만든 또 다른 컴퓨터인 넥스트 큐브 역시 실패했습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야 맙니다. 스티브 잡스는 1994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두 배 뛰어난 제품은 만들기도 힘들고, 운이 좋아서 1.33배나 1.5배 정도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봐야 6개월이면 따라잡히고 만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죠.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접목합니다. 원래 스티브 잡스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 애착이 강하고 하드웨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올인한 이 부분에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고 나중에 4억달러라는 거액에 넥스트를 애플에 팔수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고향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중심적으로 사고하면서 애플을 부활시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아름다운 상자안에 맥 OS X를 파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MP3 플레이어 업체들의 형편없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보고서는 아이팟으로 MP3플레이어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는등 철저히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죠. 그래서 언론에서는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합니다. 애플이 다망해가는 시점에서 소프트웨어를 들고 애플을 구원했다는 거죠. 하드웨어사업에서의 실패 그리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고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2막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애플 디자인의 아름다움 실패에 있다.


애플의 디자인은 왜 아름다울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무수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환경 덕분입니다.  애플은 실제와 똑같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제품을 평가합니다. 실제로 애플 디자이너들은  엄청난 실패작들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답니다. 오히려 실패작을 만드는 것에 기뻐하는데 그 이유는  실패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애플 디자인팀은 틀린것이라도 추구하고 이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험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당장의 실패가 시간과 비용을 낭비시키는것 같지만 결국에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결국 디자이너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합니다. 실패작을 연발해도 좌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찾은 것이라며 좋아하는 문화야 말로 애플 디자인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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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 이야기2009.12.09 07:55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두고 있는 모바일 조사 기관인 Flurry가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 이기사를 보고 좀 오싹했습니다. 원문이 필요하시면 아래의 사이트로 가보십시오.

http://www.internetnews.com/hardware/article.php/3851716/iPod+Touch+Asserts+Its+Presence.htm

내용인 즉슨 아이팟터치의 성장이 아이폰과 애플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 글을 쓴 Flurry의 부사장 Peter Farago는 애플이 휴대폰을 가지기 전의 어린 아이들에게 아이팟터치를 통해서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들이란 다섯살짜리의 꼬마아이들까지 포함이 되는데 특히 Peter Faragos는 아이팟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어린시절부터 아이튠스 계정을 가지고 아이팟터치로 수백개의 어플리케이션과 음악을 다운로드받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즉 어린시절부터 아이팟터치에 익숙한 아이들이 커서 휴대폰을 살때도 아이폰을 사게 된다는겁니다. 또한 아이팟 터치 세대의 어린이들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 매우 익숙합니다. 이들 세대들은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 그리고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그들의 삶을 여러친구들과 공유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소셜 네트워킹을 통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세대인 만큼 그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스스로 홍보를 해준다는거죠.   그들은 그 증거로 두가지를 제시합니다. 지난 6개월간 아이팟 터치이용자들을 분석했는데요.

아이팟터치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 접속한 사람의 비율이 40%였는데 지금은 42%로 늘어났고 게임은 43%에서 49%로 증가한것을 말합니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와 게임은 주변친구들의 영향을 받는 서비스이기 때문이 이들 이용자가 늘어난건 아이팟 터치 사용자들이 상호영향을 주었다는거죠.

그런데 이글을 작성한 Peter Faragos의 인터뷰가 조금 충격적입니다.

닌텐도 DS를 가지고 있던 7살에서 12살의 자녀들을 가진 친구들을 보니 지금은 닌텐도를 가지고 있지않고 이제 아이팟 터치를 가지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는 30달러짜리 게임소프트웨어보다 99센트짜리를 더 좋아한다는거죠. 또 게임을 사주기 위해서 상점을 갈필요도 없다는거죠.

(아래부터는 제 생각들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이건 뭐 게임 제작사 입장에서는 참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아이팟터치가 닌텐도 DS와 제대로 경쟁할 수 없는 이유가 앱스토어의 게임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메이저급의 게임 제작사들은 앱스토어로 대작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문제였거든요. 물론 앱스토어로 바이오하자드, 메탈기어 솔리드, 피파등의 게임이 올라왔지만.. 거대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게 스스로 수익을 축소하는것이라서.. 앱스토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소비자들이 게임 살려고 상점가는걸 귀찮아하고.. 또 가격에 민감해진다면.. 이건 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앱스토어에 게임을 만들수 밖에 없는가 싶기도 하고.. 또 가격이 너무 싸니.. 스스로 수익을 줄이는것 같고..

제가 게임회사 사장이라면 딜레마가 될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게임을 만들수 있는 독립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희소식이죠.

그나저나 어린시절 아이팟터치에 익숙한 아이들이 애플의 다른 제품에 충성도를 갖게 한다는 이 전략을 들어 보니.. 순간 오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애플이 아무래도 과거 애플2 시대 처럼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을것 같은데요.

오히려 무서움까지 느껴질정도입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보면 아이폰 OS기반의 기기가 5800만대정도 팔렸는데.. 아이팟 터치 2400만대를 판매하면서 4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폰이라는것 자체만으로도 애플이 어마어마 하다고 봤는데..

휴대폰을 가지지 않은 어린애들은 아이팟 터치로 공략을 하고 아이팟 터치에 익숙한 아이들이 아이폰을 구입하고 나중에는 애플의 다른 컴퓨터까지 구매하도록 하는 흐름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아무래도 휴대폰 회사들이 애플과 경쟁하려면 단순히 휴대폰만으로 경쟁해서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아이팟터치와 아이폰의 사용자들이 애플의 다른 제품에도 호의적으로 만들어 놓았거든요.

10월 미국의 컴퓨터 판매량 자료가 어제 나왔는데요.  놀랍게도 애플의 컴퓨터들이 판매량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버렸습니다.

시장조사 전문 기관인 NPD그룹에 의하면 21인치 뉴 아이맥이 데스크탑 판매 차트 1위에 올랐고 매우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27인치 아이맥이 놀랍게도 PC중에서 세번째로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또한 맥북프로가  노트북 판매순위 1위를 기록했다는군요.  지난 5년 동안 미국에서 애플 컴퓨터의 점유율은 꾸준히 올랐는데요. NPD의 관계자는 이를 헤일로효과(후광효과)로 설명합니다. 아이폰과 아이팟의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애플의 컴퓨터를 구매한다는거죠.

아무래도 한국 기업들이 애플의 전략을 제대로 한번 연구해야할것 같습니다. 그냥 아이폰과 상대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애플을 상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투에 임해야지..  아이폰만 보고 싸웠다가는 옆에서 연합전선을 펼치는 아이팟터치에 뒷통수 맞을 수 있거든요.  아이폰과의 경쟁은 좀 더 멀리.. 좀 더 넓게 보면서 진행되어야 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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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 이야기2009.10.26 14:01


시장 조사 전문 기관인 DFC 인텔리 전스가 발표한 보고서가 화제입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2014년이 되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가 닌텐도와 소니의 휴대용 게임 사업을 압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014년이 되면 전체 휴대용 게임시장의 규모는 110억 7천만달러에 이르게 되는데 아이폰이 바로 이시장의 승자가 될것이라는데요.  향후 5년가 전체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24%가 될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닌텐도와 소니가 시장을 리드하고 있지만 지금이 정점일뿐 앞으로 아이폰과 아이탓 터치의 영향력이 더 커져갈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보고서에는  모바일 게임에 대한 흥미로운 몇몇 조사결과가 있는데요. 북미에서 54% 그리고 유럽의 69%에 이르는 응답자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북미의 45%가 그리고 유럽의 36%에 이르는 응답자가 휴대폰으로  게임을 직접 산적도 있다고 하는군요.  특히 앱스토어는 이미 응답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게임 구매 서비스라고 합니다.  응답자의 15%는 이미 아이폰이나 아이팟터치를 한대 이상 소유를 했는데 닌텐도 DS는 29%정도 됩니다.

그리고 앱스토어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3%라면서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는  게임말고도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보고서 저는 대략 두가지가 느껴집니다. 첫째 애플은 가정용 게임기시장에 진출할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닌텐도나 소니처럼 게임 전용 콘솔이 아니라 애플 TV를 이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 TV에 앱스토어를 연동하게 되면 아이폰의 예처럼 게임들이 가장 인기있는 컨텐츠가 될것입니다.  그러면서 애플은 애플 TV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계로 포지셔닝을 하는거죠. 원래 아이팟 터치를 휴대용 게임기로 포지셔닝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나중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게임을 좋아하길래 소니와 닌텐도에 대적하는 게임기로 초점을 맞추었다죠.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  단일기기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통합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요즘 아이폰이 그걸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데 게임기 역시 그런 과정을 겪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닌텐도가 현재는 게임기 자체에 집중을 하면서 성공을 거두었고 오직 게임기에 충실한 전략이 닌텐도의 성공비결이죠. 하지만 이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 이미 닌텐도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닌텐도 DSi의 경우 카메라와 인터넷 그리고 MP3 와 같은 부가 기능을 추가한 멀티미디어 기기로 큰 인기를 얻고 있지요. 또한 요즘 닌텐도 위에 이런저런 멀티미디어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 두번째는 닌텐도가 언젠가 휴대폰을 만들 것이라는겁니다. 물론 닌텐도는 이런 예측을 거부하고 있겠지만 이는 어쩔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느껴지네요.  올해 초만해도 닌텐도는 애플을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7월의 실적발표에서 애플을 라이벌로 인정하고 아이폰때문에 닌텐도의 실적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까지 밝혔습니다. 아직까지 닌텐도가 휴대폰을 만든다는 증거는 없지만 시장상황이 닌텐도가 게임기를 내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점점 더 다가 오고 있습니다.  원래 회사의 변화라는게 내부의 역량을 고려해야하지만 외부의 변화를 절대 무시할수 없죠.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기시장을 진출한 것도 사실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미래의 컴퓨터 시장까지 넘보니깐 이에 대한 선제 공격차원에서 XBOX를 만든것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전략이 당장은 거실을 공략하는 것이지만 나중에는 책상위의 컴퓨터 시장까지 진출할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빌게이츠는 소니 사장에게 플레이스테이션에 들어가는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지만 이를 소니가 거절합니다. 빌게이츠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영역을 나누자는 것이었는데 소니가 이를 거절하자 게임기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합니다. 빌게이츠는 소니가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에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린겁니다. 
 
가정용 게임기시장의 소니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빌게이츠가 게임기 사업을 시작한것을 보면 그의 사업적 직감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결국 회사라는게 내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환경에 대해서 빌게이츠처럼 민감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저렇게 파죽지세로 성장해오는데 닌텐도가 가만히 있을수만은 없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수 밖에 없는 그림을 애플이 그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폰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매장에 가서 CD를 샀지만 이제는 MP3 음원을 통해서 듣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게 바로 아이팟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게임도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게임의 유통이 오프라인 매장이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서 다운로드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모바일의 경우 앱스토어는 앞으로 더 훨씬 더 활성화 될겁니다. 앱스토어를 통해서 소프트웨어를 마음껏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게 하려면 단순한 휴대용 기기보다는 휴대폰이 월등히 편합니다.  단순 휴대용 기기라면 무선랜으로만 인터넷으로 접속하지만 휴대폰은 장소에 구애받지를 않죠. 또한 다운로드 받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실행할 수 있는 휴대용 기기의 컴퓨팅 성능을 올리다보면 닌텐도가 만드는 휴대용 게임기의 최종 모습은 아이폰이 될 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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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 이야기2009.08.31 13:07


영국의 텔레그래프에서 애플의 혁신 10가지를 선정했는데요. 내용도 재미있어서 간단하게 요약해봤습니다.


1) 아이팟

아이팟이 비록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제품이다. 디지털 음악 시장의 혁명을 이루어냈으며 현재 아이팟은 사진과 비디오 보기 기능이 추가되었다. 아이팟 터치는 완전한 멀티미디어 경험을 선사해주고 있으며 유저들이 각종 게임과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2)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는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킨것은 역시 애플이다. 1984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그 유명한 빅브라더 광고와 함께 런칭된 매킨토시는 텍스트 기반의 운영체제에서 사용자가 쉽게 컴퓨터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선보인다. 이는 컴퓨터가 연구소의 과학자들을 위한 제품에서 가정의 보통 사람을 위한 제품으로의 변신을 뜻하였다.

3) iMac




1998년 등장한 iMac은 애플의 부활을 이끈 제품이다.  특히 기존 사각형의 우중충한 모습으로 대표되던 일반 컴퓨터디자인의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화려한 색깔과 내부가 다보이는 투명 디자인은 조너선 아이브를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었다.

4) iTunes

뮤직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스는 애플의 트로이 목마가 되었다. PC 이용자들이 처음 애플의 제품을 접하게 되는 제품이 바로 아이튠스 이기 떄문이다.  사용하기 쉽고 무엇보다도 아이팟과는 완벽하게 연동되는 이 소프트웨어는 일종의 후광효과가 생겨서 PC 유저가 매킨토시 유저로 옮겨가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아이튠스는 음악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전통적인 의미의 앨범을 죽이고 싱글트랙위주의 시장으로 재편하고 있다며 비난을 듣고 있다.

5) Mac OS X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보다 많은 운영체제를 판매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애플의 데스크탑 소프트웨어에 비해서 혁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2001년 데뷔한 Mac OS X는 컴퓨팅 업계에서 가장 빛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우아하면서도 사용하기 쉽고 여기에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무장한 덕분에 많은 유저들과 비평과들에게 극찬을 듣고 있다.


6) iPhone

휴대폰에 인터넷과 음악 그리고 비디오 기능이 결합된 아이폰은 애플 팬들이 기다려온 지져스 폰이다.  아이폰은 사용하기 쉽고 훌륭한 디자인을 가진 덕분에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앱스토어를 통해서 사용자는 자유롭게 게임과 각종 응용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이미 1억 5천만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키아등의 수많은 업체들이 애플의 앱스토어와 경쟁을 준비중이다.


7) 뉴톤


뉴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않았지만 깔끔한 인터페이스와 필기 인식 기능으로 애플 유저들에게 오랜시간 기억에 남는 제품이 되었다. 뉴턴이 부활한다면 그것은 아마 최근 많은 루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iTablet이 될것이다.

8) Apple 2

애플2는 1977년에 발매되어서 1993년까지 생산된 애플의 가장 인기있었던 개인용 컴퓨터였다. 애플2는 미국 학교에서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원조가 되는 비지캘크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9) 키노트

애플은 상품소개를 예술의 형태로 바꾸어 놓었다.  스티브 잡스가 참가하는 키노트 스피치와 제품소개는 전설이 되었다. 최근 잡스의 건강 문제로 프리젠테이션에 불참하였고 대신 다른 간부들이 키노트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잡스만큼의 흥분감을 주지 못했다. 만약 잡스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아마도 상품 런칭의 전율은줄어들것이다.

10) 맥북 에어


 스티브 잡스가 조그만 서류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내자 키노트에 참가한 전문가와 고객들은 휴대용으로 들고 다닐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이 제품에 깜짝 놀랐다. 맥북에어는 아수스의 EeePC와 같은 싼 가격의 넷북과는 다른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즉각적으로 삼성과 델같은 다른 제조업자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고 곧 경쟁제품들이 생산되었다.  맥북 에어는 특히 이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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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9.07.24 16:20


대량으로 아이팟 사진들이 누출되었습니다. 너무많이 누출되어서 뭐 조작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을정도록 생생한 사진들이 쏟아졌습니다.

유출 경로는 다 예상했다시피 중국의 케이스 제작 업체입니다.  예전에도 케이스를 근거로해서 이런저런 루머가 떠돌았는데. 이사진을 보니 완전히 확정된 느낌입니다. 

몇장의 사진을 더 감상하시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계속 해볼까요?














이번세대의 아이팟의 특징은 카메라가 전면에 채용되는 것으로 보이네요. 아이팟 터치가 그동안 9월에 발표되었으니 그때가면 정확하게 알수 있곘죠?  하지만 이정도 사진을 보면 99% 확정이라고 생각 되네요. 제가 주목한 것은 아이팟 터치의 카메라가 한가운데 있다는 겁니다. 아이폰이 구석자리에 있는것과 대조되네요. 그리고 만약 진짜 조작이라면. 카메라 위치도 아이폰과 같아야 할텐데.. 저렇게 중앙에 있는것을 보니. 더욱 루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이팟 시리즈에서 전면적으로 카메라 채용을 채용함으로써 가장 걱정해야 할 회사는 카메라 전문회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

물론 카메라 업체들의 제품이 애플것보다 훨씬더 뛰어난 화질을 자랑하고 있지요. 그런데 MP3에서 보듯이 꼭 음질이 좋다고 해서 음악기기가 승리하는건 아니거든요. 사용자 편리성 그 자체를 무시할수는 없지요

플리커에 올라온 사진을 분석했더니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캐논 다음으로 2위라고 하더군요. 사실상 뚝딱이 카메라는 아이팟이 흡수할것 같고.. DSLR은 다른 시장을 형성할듯하네요.

아참 제가  맨처음에 한국에 3G가 나오면 무조건 먼저 살려고 했는데 .. 3GS 나올동안 기다리기로 결심한 동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오직 3GS로 찍은 뮤직비디오인데요. 저는 깜짝놀랬습니다.


 


어때요? 화질이 생각보다 괜찮지 않습니까? 사진도 300만화소지만.. 사진도 뚝딱이 카메라는 충분히 대처할수 있을것 같더군요.  만약 아이폰이 한국에서 정식 발매되면 저의 블로거도 달라질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밖에 나갈때 뭐 들고 다니는거 정말 귀찮아서.. 가방은 물론이거니와.. 지갑도 안들고 휴대폰과 카드만 들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이폰이 나오면.. 이러저런 사진도 더 많이 찍게 될것이고.. 가끔 마음에 드는 사진도 블로거에 올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아참..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베조스는 너무 바뻐서 일기를 쓰지 못하는 대신 항상 카메라를 들고 이런저런 사진을 찍는다고 했는데.. 저도 베조스를 따라서.. 일기 대신 하루하루 사진을 찍어서.. 기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이런 거보면.. 애플의 아이폰은 우리의 일상생활자체를 많이 변화시킬것 같습니다.

유투브에서 동영상 업로드가 400% 늘었는데 그게 다 3GS덕분이라고 하니. 아이폰 3GS가 한국의 동영상에도 영향을 줄테고.. 또 한국 사람은 전철에 오랜시간 있으니.. 트위터나 미투데이같은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될듯하네요. 저도 아이폰 나오면 그때쯤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이거든요. 아이폰이 지금 세상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는 소식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한국은 그 아이폰을 이용해볼수도 없다니.. 좀 안타깝습니다. 얼마전에 뉴욕타임스에서 왜 일본 휴대폰 업체들이 해외에서 맥을 못추나 그런 기사를 내놓았는데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폐쇄적인 시장이 되어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렸다는건데 이러다가 우리나라도 세계 글로벌 시장과 멀어져서 따로 발전하는게 아닐까 싶어서 조금 걱정됩니다. 

출처  Cult Of M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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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