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사실들2011.06.14 08:25







1. 포켓몬스터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유명한 게임 오타쿠였다.




포켓몬스트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중학생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면서 게임의 세계에 빠져버린 그는 학원을 선택할때도 오락실이 가장 가까운곳으로 다닐정도였다. 워낙 뛰어난 게임실력덕분에 오락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임에 대한 사랑덕분에 그는 세가에서 진행하는 게임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으며 GAME FREAK라는 잡지도 만들었다. 이 잡지는 일종의 동인지로 원고를 복사한다음에 타지리 사토시가 직접 후지케스로 찍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형편없었지만 게임 공략은 매우 훌륭해서 300엔에 팔았던 잡지가 만권씩 팔린적도 있다.


2. 프로그래밍에 문외한이었던 타지리 사토시 게임을 위해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다.

 





타지리 사토시의 부모님들은 그가 공부를 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기를 바랬지만 게임에 빠져든 타지리 사토시는 학업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전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프리랜서로 각종 게임 잡지에 원고를 기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재미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구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고 직접 게임을 개발할 생각을 하게 된다. 프로그래밍을 전혀 몰랐던 그는 2년동안 공부한 끝에 게임을 만들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인맥을 총동원해서 1년간의 제작끝에 쿠인티라는 게임을 만든다. 남코에서 발매된 쿠인티는 20만개가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는 5천만엔이나 벌게 되고 이돈으로 타지리 사토시는 GAME Freak을 창업한다.

 
 

3. 포켓몬스터는 어린시절 곤충 채집에 대한 추억의 산물이다.
 




1989년 닌텐도에서 발매된 게임보이는 테트리스덕분에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테트리스의 매력은 통신케이블을 연결해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이에 착안해서 통신케이블을 이용한 게임을 구상하는데 마침 어린 시절 동네 주변의 주차장과 숲속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채집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곤충을 채집해서 곤충의 습성을 연구한덕분에 친구들로부터 곤충박사로까지 불리었다. 그는 이때 친구들과 곤충이야기를 하며 더욱 친해질수 있었다. 하지만 동네가 급속히 도시화가 되면서 곤충을 채집하는 아이들이 없어졌는데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즐거웠던 추억을 되살려주고자 새로운 게임을 기획하는데 그 게임이 바로 포켓몬스터이다.


4. 포켓 몬스터의 원래 이름은 캡슐 몬스터 였다.
 

포켓 몬스터의 원래 이름은 캡슐 몬스터였다. 이는 통신 케이블을 이용해서 캐릭터와 아이템을 교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5. 포켓몬스터는 1991년에 완성될 작품이었지만 1995년에 완성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큐멘터리 프로듀셔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에게 알려준다.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게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타지리 사토시를 알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각종 게임 기판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타지리 사토시의 도움을 받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후에도 함께 교류하면서 지낸다.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마침 일본의 광고천재인 이토이 시게사토와 친분이있었는데 그는 닌텐도의 투자를 받고 에이프를 운영중이었다. 이런 관계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의 아이디어는 닌텐도에까지 흘러가게 되고 제작비를 지원해주게 된다. 당초계약은 1991년까지 게임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는 새로운 개념의 게임으로 스케일도 컸기 때문에 제작은 난항을 거듭한다. 이에 닌텐도는 자사의 캐릭터를 이용한 게임을 개발하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이때 요시와 마리오 와리오 같은 게임을 제작하게 되는데 요시가 해외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회사는 풍부한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타지리 사토시는 다시 포켓몬스터에 전념을 해서 1995년 겨우 게임을 완성하게 된다.

 
6. 포켓몬스터의 초기 판매량은 기대치 이하였다.




닌텐도에서는 전국에 텔레비전 광고를 집중적으로 방영할 정도로 포켓몬스터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와 달리 단 7만 5천장의 주문을 받을정도로 부진하였다. 하지만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코로코로 코믹스에 연재되면서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코로코로 코믹스는 180만부나 발행되는 잡지로 코로코로 코믹스는 아이들의 유행을 선도하는 만화잡지였다. 
 
 
7. 포켓몬스터의 인기에 가속도를 붙인 것은 버그덕분이었다.
 





포켓몬스터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는 계기는 제작자도 생각하지 못한 버그덕분이었다. 포켓몬스터는 원래 150마리의 몬스터를 수집하는게 최종목표였다. 그런데 게임 마니아들사이에서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가 151마리라는 소문이 돌게 된다. 처음에는 회사도 이 소문의 진위여부를 몰랐으나 회사의 프로그래머가 테스트를 위해서 몰래 넣어둔 몬스터라는 것을 알게 된다. 151번째의 몬스터는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절대로 등장할 수 없지만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등장하였다. 게임 유저들은 151번째의 몬스터를 획득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포켓몬스터를 연재했던 코로코로 코믹스는 151번째의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들의 빗발치는 문의덕분에 알게 된다. 이때 코로코로 코믹스의 부편집장인 쿠모 마사카즈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코로코로 코믹스에 엽서를 보내준 사람들중에 100명을 선정해서 151번째 몬스터인 뮤를 선물해주는 이벤트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코로코로코믹스의 독자들이 엽서를 보내는데 무려 78000명이 참여하게 된다.  뮤를 선물해주는 이벤트는 포켓몬스터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시켰으며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어느덧 신드롬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8. 미국 관계자들은 포켓몬스터라는 이름을 이상하게 여겼다.
 



닌텐도는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게임보다는 우선 만화로 포켓몬스터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였다. 그래서 만화에니메이션의 총책임자인  쿠보마사카즈 미국을 직접 방문해서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조율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포켓몬스터라는 제목자체를 이상하게 여겼다. 몬스터라고하면 뭔가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느낌이 나는데 비해서 정작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쪽 관계자들은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 캐릭터들의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닌텐도는 포켓몬스터의 몬스터 이름들이 제각각이 되면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전세계적인 커뮤니티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고수하게 된다.


9. 2010년까지 포켓몬스터시리즈의 총 판매량은 2억개가 넘는다.
 



포켓몬스터는 2010년까지 2억개가 넘게 판매되었다. 철저한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을 택한 포켓몬스터는 인형,카드,만화,에니메이션,음반등 다양한 관련 상품들이 쏟아졌는데 관련제품의 일본 매출은 1조엔 그리고 해외 매출은 2조엔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 포켓몬스터에는 미야모토 시게루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있다.

 



타지리 사토시는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을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를 존경하였고 그를 자신의 롤 모델로 여겼다. 포켓몬스터가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때 미야모토 시게루는 멘토가 되어서 용기를 복돋워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존경을 담아 포켓몬스터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이벌이름을  시게루라고 정하였다. 참고적으로 만화속 주인공의 이름은 자신과 같은 사토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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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0.12.05 08:22



이글은 포켓 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스토리 -하편- 으로  마지막 글입니다. 이전의 글을 보고 싶으면 아래 글을 클릭하세요.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상-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중-   포켓몬스터의 놀라운 미디어 믹스 전략



포켓몬스터는 일본에서 게임이 먼저 나오고 또한 게임을 중심으로 프로모션이 진행되었던데 비해 미국에서는 에니메이션이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에니메이션을 총책임졌던 쿠보마사카즈가 미국을 몇번이나 방문하면서 관련 프로젝트를 협의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에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포케몬에는 일본식 이름이 들어갔는데 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발음이 많았다. 사실 애초부터 포켓몬스터라는 말 자체가 걸림돌이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이 몬스터라고 하면 거대하고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포켓 몬스터의 캐릭터들은 한결같이 귀여운 이미지였다. 그래서 미국쪽 관계자들은 포케몬의 캐릭터는 몬스터이미지와는 너무 상반된다면서 제목도 바꿔야 하고 캐릭터 이름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일본 닌텐도 관계자들은 전세계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명칭도 전세계에서 통합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몬스터 이름이 국가마다 다르면 전세계적인 사회현상을 불러일으키가 힘들어 진다고 생각한 닌텐도는 결국 에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바꾸는 대신 몬스터들의 명칭은 가능하면 원작을 유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에니메이션 내용에는 좀더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경우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했지만 미국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에니메이션 내용을 몇차례 수정해야만 했다.

그런데 에니메이션 판권을 가지고 있던 4Kids사가 미국 지방 방송국을 상대로 .방영권을 파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 미국 방송국은 과거 일본 에니메이션들의 시청률이 저조했다는 이유로 포켓몬스터를 방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닌텐도는 500만달러를 프로모션 비용으로 책정하고 있다면서 겨우 겨우 방송국을 설득할 수 있었다. 1998년 9월 9일 드디어 포케몬이 미국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닌텐도는 캐릭터를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KFC와 2500만달러를 들여서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캐릭터 상품을 나누어주는 캠페인을 벌이며 분위기를 띄운다.

  9월 28일에는 게임 포켓몬트서가 발매되었다. 에니메이션과 게임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서로의 인기를 상승 시켰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게임과 에니메이션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장난감과 카드 같은 관련 상품이 연달아 발매되면서 닌텐도가 당초 계획한대로 포케몬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너도나도 포켓몬을 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초등학생들에게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포켓몬을 잘하면 아이들에게 인기 학생이 되었지만 못하면 학교생활에 소외감을 느껴야 할정도로 사회적 현상으로 발전했다.  포케몬의 히트로 미국에서는 찬반 양론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정서를 헤친다는 반대의견과 포케몬은 머리를 쓰는 게임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고력을 높여준다며 칭찬하는 부모도 있었다. 한편 포켓몬스터의 에니메이션은 게임을 사라는 광고에 불과하다며 혹평하는 사람들은 닌텐도의 사행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반면에 아이와 대화가 없었지만 포케몬을 함께 즐기며 재미있는 휴일을 보냈다면서 포케몬을 칭찬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실 이런 논쟁자체가 포케몬의 존재를 세상에 더욱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단순히 닌텐도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까지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 마리오가 일본인들에 대한 선입관을 약간 바꾸기는 했지만 포켓몬스터 만큼은 아니었다. 포켓몬스터의 팬들은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일본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으로 발전되었고 급기야 다른 일본 문화상품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본 에니메이션의 수출도 덩달아 늘어났다.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일본 에니메이션이라면 무조건 미국방송국에서 판권을 구입하던 시기도 있었다.  포켓 몬스터의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포켓몬스터를 즐겼던  세대는 인터넷 세대였다. 그들은 포켓몬스터에 대한 내용을 교환하기 위해서 홈페이지를 개설했는데 이들은 나중에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을 추가하면서 일본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까지 수행하였다.

 포켓 몬스터는 일본에서의 매출이 1조엔 그리고 해외에서의 매출이 2조엔에 이르고 있으며 게임소프트웨어 전체시리즈는 1억 8600만개가 팔렸다.  포케몬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봐도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국가이미지 개선등에 미친 부과효과까지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성공이었다.  그런데 이런 성공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공을 되짚어보면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우선 제작초기부터 해외를 고려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몇가지 선택이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닌텐도는 문화의 특수성에 기대지 않고 인간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만든다. 포켓몬스터 역시 너무 일본적인 요소는 배제 되었다. 특히 포켓몬스터의 인기 캐릭터인 피카추는 무국적성을 띄고 있으며 캐릭터는 성별에 따라서 남자와 여자의 선호도가 달라지는데 피카추는 아예 그런 성별을 알수가 없다. 원래 포케몬스터는 피카추가 아니라 분홍색깔을 가진 다른 몬스터를 메인으로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그 분홍색은 너무 여성취향적이라는 이유로 노란색의 피카추를 주인공으로 결정했다.

원래 무엇인가 붐이 일어났다고 언론에서 떠들면 그 순간 붐은 끝났다고 한다. 사실 포켓 몬스터의 경우 많은 사람들은 단기적인 붐으로 끝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데  포켓몬 붐이 한가창 일 때 닌텐도는 아예 이시하라 츠네카츠를 사장으로 한 주식회사 포케몬을 창업시켰다 처음에 사람들은 포케몬의 인기는 금방 시들어질 텐데 그때는 포켓몬이라는 회사는 어떻게 될것이냐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그건 도요타나 닛산에게 자동차의 시대가 끝나면 어떻게 할것입니까라고 묻는것과 같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포켓몬의 창업이유가 포케몬을 영원히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포켓몬만으로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직원들의 마음가짐도 다르고 오직 포켓몬만 생각하다 보니 더욱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생겨났다.  또한 포켓몬스터 에니메이션은 전세계적으로 7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방영중이고 여기에 각 나라별로 게임과 캐릭터에 대한 판권등이 존재하는데 이런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었는데 주식회사 포켓몬을 출범시킴으로써 이를 일원화 할 수 있었다.

덕분에 프로모션을 할때도 전세계에서 짜임새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일회성 붐을 지속가능한 문화로 만들기 위한 취지로 창업한 주식회사 포켓몬의 철저한 브랜드 관리덕분에 지금까지도 포켓몬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포켓몬스터가 예전처럼 사회현상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는 매년 여름에 개봉되어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고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송중이며 2006년 등장한 포케몬 다이아몬드/펄은 무려 1680만장이나 판매되었다.  포켓몬의 성공을 보면 새삼 닌텐도의 대단함이 느껴진다. 포켓몬스터의 성공에 빠질 수 없는 건 닌텐도의 과감한 투자였다. 사실 게임 포켓몬스터를 만든 회사인 Game phreak은 이렇다할 실적이 없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손수 제작비를 투자했고 개발자들 스스로 포기하고 싶어할 정도로  개발이 어려움에 닥쳤을때는 오히려 닌텐도가 나서서 물심양면으로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닌텐도는 하나의 게임에 무려 6년동안이나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로모션과 미디어믹스 전략을 세울 때 역시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이렇게 닌텐도가 장기적으로 포켓몬스터를 지원해주고 거액을 들여서 프로모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가치를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포켓몬스터의 가치를 제대로 봤기에 투자도 하고 작품이 완성되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런데 닌텐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국 원동력도 결국 가치를 보는 눈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닌텐도가 처음 패미컴을 만들어서 성공시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이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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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 이야기2010.12.03 08:22




포켓 몬스터는  중학생 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던 타지리 사토시로부터 시작된다. 1965년 도쿄의 외곽 지역인 마니치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는 순간 완전히 게임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즐겼다. 어느 날은 부모님이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라고 했는데 그는 오락실과 가장 가까운 곳의 학원을 등록할 정도로 게임에 미쳐있었다. 그의 게임 실력도 출중하여서 오락실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에 마침 세가에서는 게임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는데 여기에 응모를 한 타지리 사토시는 대상을 받게된다. 이후 게임의 세계에 더욱 빠져든 그는 다음 해에 게임 잡지 GAME Freak 를 직접 창간한다.  1983년은 닌텐도에서 패미컴이 발매되던 해로 게임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인정받기 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게임 잡지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에 17살의 타지리 사토시는 직접 잡지를 창간하고 게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것이다.  물론 GAME Freak 은 정식 게임잡지라기 보다는 아마추어들의 동인지와 비슷했다. 타지리 사토시는 당시 인기 있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돈키콩과 같은 인기 게임의 공략이나 숨겨진 비법들을 직접 손으로 쓴 후 이를 복사하고 후치케스로 찍어서 잡지를 만들었다.  차마 잡지라고 부를 수 없을정도로 겉모양은 조악했지만 내용은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그래서 300엔에 팔았던 이 잡지는 한때 만권씩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오늘날 일본 게임 잡지의 원조로 인정받고 있다.

원래 타지리 사토시의 부모님들은 그가 공부를 해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 원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타지리 사토시는 더욱 게임에 빠져들었고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갔다.  결국 전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타지리지 사토시는  패미통과 같은 게임 전문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생활을 하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게임에 대한 글들을 계속 쓰면서 어느덧 재미있는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을 구분할 수 있는 직관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하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 그는 2년간의 노력끝에 겨우 게임을 제작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된다. 그는 이때  게임 작가로 활동하면서 알게된 인맥을 총동원해서 패미컴 게임개발을 위한 팀을 구성한다.  그런데 그가 게임을 제작한 방식은 당시로 보면 획기적이었다. 당시 패미컴으로 게임 개발을 하려면 닌텐도에 허락을 받고서 제작을 해야 했다. 하지만 타지리 사토시는 프리랜서 방식으로 팀원들을 모은 후 게임을 먼저 만들었고 그후 유통사를 찾았다. 이는 마치 영화와 비슷한 형태의 제작방식으로 화제가 되었다.  타지리 사토시가 만든 게임은 1년 간의 제작끝에 만들어졌다.  쿠인티라고 이름 붙여진 이게임은 남코를 통해서 발매된다. 쿠인티는 20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데  타지리 사토시는 이때  5천만엔을  벌게된다.   이 돈을 가지고 타지리 사토시는 아예 정식으로 게임 회사를 창업한다. 회사의 이름은 그가 창간한 잡지명을 따라서 GAME Freak 로 결정했다.

1989년 닌텐도에서는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를 출시 한다. 테트리스의 인기 덕분에 게임보이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그런데 테트리스가 인기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두개의 게임보이를 통신케이블로 연결해서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이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게임보이의 통신 케이블로 많은 사람들이 테트리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나오기전 타이지리 사토시는 동네주변의 주차장과 숲속을 돌아다니면서 잠자리 같은 곤충을 채집하면서 놀았다. 타지리 사토시는 제대로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서 곤충의 습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고 어느덧 친구들에게 곤충박사로 불리면서 인기가 많았다.  이렇듯 그는 곤충을 보면서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더욱 친해질수가 있었다. 그런데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더 이상 동네에서 곤충을 채집할 수 없게 되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게임으로 재현보고자 했다.  도시화로 인해서 곤충 채집의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즐거웠던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통신 케이블을 통해서 캐릭터와 아이템을 교환한다는 개념의 포켓 몬스터였다. (그래서 처음 게임이름은 캡슐몬스터였음)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평소부터 친하게 지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에게 들려주었다. 둘의 인연은 게임관련 다큐멘타리를 만들고 있던 프로듀서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일본에서 가장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던 중 타와지리 사토시를 소개 받으면서 시작된다.  게임 기판을 수집하는게 취미였던 타와지리 사토시는. 70년대와 80년대에 발매한 대부분의 게임기판을 가지고 있었고 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풍부하였는데 이에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타지리 사토시 역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자 텔레비전 업계에서 유명인사로 통하는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자 호감을 느끼고 이후 계속 해서 교류하게 된다.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은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에이프라는 회사에 타이지 사토시를 소개시켜준다. APE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앞으로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고갈될 수 있으니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독창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한 회사였다. 에이프의 사장은 광고 천재로 유명한 이토이 시게사토였는데 이시하라 츠네카츠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1990년 이시하라 츠네카츠의 소개로 타와자리 사토시는 APE를 직접 방문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한다.  마침 에이프에는 닌텐도에서 파견 나 온 카와구치 다카시가 근무중이었는데 그는 이 아이디어를 닌텐도 본사에 들어가서 보고한다. 타지리 사토시의 아이디어가 마음에든 닌텐도는 전격적으로 개발자금을 투자하기로 한다.

처음 계약할 당시에는 1991년까지 닌텐도에 게임을 납품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구현하는게 쉽지가 않았다. 게임보이가 가지는 성능의 한계도 있었지만 게임 개발을 하면서 타지리 사토시의 욕심도 더욱 커졌다. 당초 기획과는 다른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추가되어갔고 게임 제작은 계속 지연되었다. 그러자 직원들도 하나 둘 회사를 그만두기 시작했다. 이때 이사하라 츠네카츠는 포켓 몬스터 개발에 모든 걸 올인하지 말고 머리도 식힐겸 다른 쉬운 게임을 먼저 개발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당시 회사의 개발자금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포켓몬스터 완성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스터 제작을 중지하고 닌텐도로부터 제안 받은 여러 게임을 하청의 형태로 개발 해준다. 이때 그가 개발한 게임이 요시아일랜드와 와리오 마리오였다.  특히 요시 아일랜드는 해외에서 게임이 많이 팔리면 개런티를 더 받기로 계약을 했다. 그런데 요시 아일랜드가 해외에서 큰 히트를 한 덕분에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회사는 풍부한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는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여러 게임을 개발하면서 회사의 개발력도 향상시키는등 제작중지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돌아왔다.

한편 이런 저런 사정으로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에이프가 사실상 폐쇄되자 회사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크리쳐즈를 창업한다. 그리고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자신이 프로듀서가 되어서 직접 포켓몬스터를 챙기기 시작한다. 사실 타지리 사토시는 여러 번 포켓몬스터 제작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럴때 마다 옆에서 포켓몬스터를 계속 개발해주도록 용기를 주고 지지했던 사람이 이시하라 츠네카츠였다.  특히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카드 게임에 조예가 깊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포켓 몬스터에 다양하고 값진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실제로 포켓몬스터가 제작중지된 상태에서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제시한 게임아이디어 덕분에 다시 프로젝트가 살아날정도였다.  

포켓몬스터 제작이 재개 된후 10명의 개발자들은 한 사람이 된것처럼 의기투합하게 된다. 나중에 포켓몬스터의 성공 요인은 10명의 개발자가 모두 같은 비전을 한마음으로 품었기 때문이라고 밝혀질 정도로 정말 하나가 되어서 열정적으로 게임을 개발한다. 다시 게임 제작이 시작 된 후 포켓 몬스터는 초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갔다.  원래 포켓몬스터는 전투위주의 게임이었지만 나중에는 150마리의 몬스터를 수집해서 도감을 완성한다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또한 수집된 몬스터는 애완동물의 이미지였지만 나중에는 친구와 동료의 이미지로 바뀌었고 스토리도 덩달한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로 수정되었다. 고객들이 몬스터를 통해서 자신의 개성을 더 나타낼수  있도록 수집한 몬스터의 이름을 바꿀수 있게 하는등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나중에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스터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이는 팀원들이 함께 만든 게임이라고 밝힐정도로 팀원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명작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많은 곡절을 겪은 끝에 포켓몬스터는 1995년 겨우 완성이 된다. 원래 포켓몬스터는여름에 발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새로운 형태의 대작 게임이었던 관계로 예상치 못한 오류들이 대거 발견되었다.  오류를 찾고 수정하는데만 해도 몇 개월의 시간이 더 걸렸다. 결국 포켓몬스터는 1996년 2월 27일에야 겨우 발매되었다  처음 닌텐도는 게임의 성공을 확신하고 텔레비전 광고를 집중적으로 방영하는등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초기 포켓몬스터의 성적은 단 7만 5천장의 주문을 받을 정도로 저조했다.  그런데 포켓 몬스터는 다른 게임과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판매량이 늘어 났다.  이렇게 게임의 인기가 늘어난 건 일본의 인기 만화잡지인 코로코로 코믹스에 포켓몬스터 만화가 연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치밀한 미디어 믹스 전략의 결과였다.

<내일은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중편으로 포켓몬스터가 일본에서 히트작이 되는 과정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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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 이야기2009.12.12 08:20
포켓몬스터 잘 아시죠? 포켓몬스터는 일본에서만 매출이 1조엔 세계적으로 2조엔을 기록한 게임의 대표적인 성공 신화죠. 원래 일본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지가 좋지 못했지만 포켓몬의 피카츄 덕분에 국가 이미지도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문화를 추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포켓몬을 좋아하면서 일본 만화에 빠져들고 일본 대중문화에 호감을 가지게 되더니 일본에 대한 국가 이미지가 좋아하진 경우죠. 하여튼 포켓몬은 문화컨텐츠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포켓몬은 닌텐도가 유통하고 일부 제작비용을 되었기 때문에 닌텐도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제작사는 게임 프리크라고 동경에 소재하고 있는 게임회사입니다. 게임 프리크의 창업자가 타지리 사토시입니다.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의 아버지인데 만화속 주인공 이름이 바로 타지리 사토시죠.. 참고적으로 주인공의 라이벌은 시게루인데 이것은 타지리 사토시가 평소 존경하는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의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로부터 따온 이름이랍니다.  포켓몬스터가 나온지 어느덧 10년이 나왔지만 나오는 게임마다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게임 프리크의 자금사정은 아주 끝내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 사무실도 엄청 나게 멋지고 훌륭합니다. 2008년 올해의 뉴오피스 상을 받을 정도니 그 훌륭함은 이미 검증이 된것죠. 하여튼 포켓몬 제작사인 게임프리크의 홈페지에 공개된 사진들을 한번 보시죠. 사무실의 새로운 획을 긋는 것처럼 멋집니다. ^^;  특히 주목해야 할것은 회의실입니다. 직원이 53명에 불과하지만 회의실이 무려 일곱개나 된답니다. ^^:;

1. 입구




게임 프리크 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인데요. 저기 위에 지구 본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답니다. 저렇게 지구본을 놓은것은 세계를 향해 놀이를 만들고 있다는 구상이 담겨져 있다는군요. 지구본을 볼때마다 포켓몬 유저가 지구의 각 나라에서 놀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그런 깊은 의미도 있답니다.

2.  복도


복도는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고 우주로부터 퍼지는 공간을 이미지화 하고 있답니다. ^^;;


3. 오피스 내부


일부러 파티션을 낮게 설정해서 직원 전원이 서로 바라볼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답니다. 데스크나 의자 역시 디자인이 뛰어난 것을 채용해 창조적인 환경을 만들었다는 군요. ^^;;


4. GAIA 회의실



지구를 테마로 해서 자연이 넘치는 회의실입니다.  지구 그 자체를 살아있는 혹성으로 보고 지구로부터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려고 한다는 군요.


5.  SATURN 회의실



토성을 이미지한 디자인입니다.  PC 모니터를 보면서 평등하게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놨습니다.



6. MARS 회의실






싸움을 테마로 한 회의실이랍니다. 빨간벽과 화성을 본뜩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서양의 무기와 방패가 장식되어 있어 장초적인 투쟁심과 모험심을 자극합니다.


7. 비너스 회의실


평화를 테마로 한 회의실이라는 군요. 작은 여자아이를 모티브로해서 동심에 돌아간 발상을 하자는 목표로 만들었답니다. 방안은 여성 직원이 센스를 발휘해서 여성스러운 아이템으로 가득합니다.


8. SUN



사람이 모이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SUN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테마는 파워입니다. 집과 회사의 중간과 같은 분위기로 릴렉스한 휴식 공간을 추구합니다. 조명도 태양과 같은 디자인의 따뜻함이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서는 여러 음료수를 마시면서 까페처럼 즐길수가 있답니다. 바쁜시간에도 동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9. 주피터




다른 개성 넘치는 회의실과는 다르게 가장 베이직한 느낌으로 디자인된 회의실이라는 군요. 최신의 음향기기와 게임게, 화이트 보드등이 놓여져 있어서 영화를 감상하거나 사내 강연회등이 열리는 장소랍니다. 테이블은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기 때문에 공간을 플렉서블하게 사용할수 있답니다. ^^:;

10. COMET



사무실 중앙에 위치한 COMET은 잠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장소이자 각종 서적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이곳의 테마는 진화라는 군요. 게임 프리크는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발견으로 진화해 갈것이라는 의지를 담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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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